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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은 훌륭한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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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은 훌륭한 서사시"

입력
2002.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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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 독일어 번역 삿세 함부르크대 교수베르너 삿세(61) 독일 함부르크대 교수가 독일어판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들고 한국을 찾아왔다.

같은 학교의 안정희(45) 교수와 함께 번역한 것이다.

중세 한국어 문학작품이 최초로 외국어로 번역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작업이다.

26일 대산문화재단에서 만난 삿세 교수는 유창한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인들의 진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삿세 교수가 월인천강지곡의 번역을 시작한 것은 5년 전.

고대ㆍ중세 한국어 전공인 그는 독일 학생들이 쉽고 재미있게 옛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

짤막한 문장만 나열되는 문법책만으로는 한국어의 참맛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번역할 만한 작품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1447년 세종대왕이 부처의 공덕을 칭송해 500여 수의 노래로 지었다는 불교 찬가 월인천강지곡에 주목했다.

학생들이 부처의 일대기를 노래한 이 작품을 흥미있게 읽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왜 월인천강지곡을 선택했을까.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최고(最古)의 가사(歌詞)로 이 작품과 쌍벽을 이루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가 있다.

삿세 교수는 “월인천강지곡은 용비어천가에 비해 서사성이 뛰어나고, 생동감 있는 언어가 돋보이며, 당시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그는 “월인천강지곡을 통해 세종대왕이 훌륭한 언어학자일 뿐만 아니라 대단한 시인임을 확인했다”며 “독일 작가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연상시키는, 긴장과 예술성이 있는 훌륭한 서사시”라고 힘주어 말했다.

당초 2년 정도로 계획했던 작업은 점점 길어졌다. 무엇보다 불교 용어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

함께 번역한 안정희 교수는 “제대로 번역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법화경, 화엄경 등 불교의 경전을 읽었다”고 말한다. 외국인이 참고할 만한 주해서가 나와 있지 않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소학사에서 출판된 책의 전반부는 월인천강지곡 194연(聯)을 독일어로 번역해서 원문과 함께 실었으며, 각 연마다 작품 및 불교 용어에 대한 해설을 상세하게 덧붙였다.

후반부는 어휘의 음운론적 형태론적 분석, 리듬과 운율의 연구, 텍스트의 구성과 전개방법 등에 대한 연구 성과를 수록했다.

삿세 교수는 함부르크대 한국학과 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1999년부터 유럽한국학회(AKSE) 회장을 맡고 있다.

함부르크대 한국학과 전공자는 현재 40명.

일본학 전공자 400명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꾸준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1992년 설립 이후 독일 한국학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유럽에서도 인지도가 높아 유학을 오는 외국 학생들도 많다.

삿세 교수의 한국 사랑은 각별하다.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그는 대뜸 “전남 나주”라고 답한다.

그는 1966년 한국에 와 나주종합기술학교 등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며 5년여 생활하다 독일로 귀국, 이후 아예 한국학을 전공으로 삼았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그의 성(姓)은 ‘잣세’로 발음되지만, 그는 ‘삿세’로 표기해 달라고 주문한다.

방랑시인 김삿갓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 중 한 글자를 따왔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두시언해(杜詩諺解)’ ‘꼭두각시’ 번역과 함께 구결과 이두의 연구, 번역에도 도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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