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나는 하루하루 손꼽아 월드컵만 기다리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월드컵이 너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게 싫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월드컵이 끝날 테고 그 다음엔 무슨 재미로 살아갈 지 막막하기 때문이다.월드컵이 가져다 줄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효과는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펼치는 환상적인 플레이를 본 후 “아, 나도 저런 걸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실제로 축구를 직접 하게 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어느 운동이든 ‘하는 것>보는 것>……>스포츠를 빙자하여 사기치는 것’의 순서로 부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월드컵 효과가 거꾸로 나타나는 것 같다. 축구를 할 수 있는 운동장이 오히려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어느 국립대학교’만 해도 학부생 2만여 명을 포함하여 총 인구가 3만 명을 넘나드는 ‘대도시’인데 운동장은 1.6 개(대운동장=1, 기숙사 운동장=0.6) 밖에 없다.
연구공간확보 같은 거룩한 명분 아래 멀쩡한 운동장을 말살하는 참극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겨우 살아남은 기숙사 운동장은 너무 작아서 킥오프 할 때 수비진이 직접 슈팅에 대비하여 벽을 쌓아야 한다.
대운동장에는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어 체육수업이나 운동부 훈련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다.
축구 좀 해보겠다고 대운동장에 나온 대부분의 학생들은 골대 뒤에서 골목축구를 하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기 위해 운동장에 교실을 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짓을 태연히 자행할 수 있는 사람들 눈에는 운동장이 그저 ‘공터’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 사람들의 머리야말로 ‘진짜 공터’가 아닐까?)
모든 교육은 지·덕·체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학교운동장은 엄연한 교육의 한 공간이다. 체육교육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축구 같은 단체운동은 학생들로 하여금 협동심, 책임감, 자기절제능력, 적극적인 태도 등을 길러주어 ‘독립적이며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개인’으로 자라나게 한다.
‘똘레랑스(관용심)’ 같은 것도 어린 시절부터 축구만 ‘제대로(!)’ 배우면 저절로 갖춰지는 덕목이다.
그런데 지금 각급 학교에서는 ‘운동장 없애기 월드컵’을 벌이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괴물로 자라나게 될까? (하긴 멀쩡한 운동장을 함부로 없애는 지금의 어른들보다 더 나빠지지는 어렵겠지만.)
강석진 고등과학기술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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