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 공상과학소설은 판타지가 되고 만다.시간은 소설 속의 과학을 낡은 것으로 만들고, 공상만 남아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옷을 입고는 신나는 판타지 영화가 된다.
영국의 공상과학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1866~1946)의 작품 ‘우주전쟁’ ‘모로박사의 섬’ ‘투명인간’이 그랬고, 그의 본격적인 작가 데뷔작인 1895년의 ‘타임 머신’(The Time Machine) 역시 비슷한 운명을 걷고 있다.
이제는 보통명사가 된 타임 머신을 타고 80만년 후의 지구로 간 주인공 ‘시간여행자’가 그곳에서 확인한 것은 문명이 아니라 야만이었다.
인류는 무위도식하며 사는 엘로이족과 지하세계에서 죽도록 일만 하는 추한 머록족으로 양분됐고, 적개심에 가득찬 머록족은 엘로이족을 잡아먹고 있었다.
우울한 미래와 인류진화에 대한 비관적 견해, 계급갈등은 19세기 산업혁명시대의 영국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이기도 했다.
‘타임 머신’은 1960년 조지 펄이 영화로 만들었고, 이후 그의 비관적 미래상은 SF 영화의 한 전형이 됐다.
펄 감독은 웰스가 엄청난 양을 할애해 묘사한 엘로이족과 머록족의 갈등과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모두 영화에 담기를 포기했다.
대신 지식도 문화도 잃어버리고 오직 놀기만 하는 엘로이족을 정상적인 미래 인간으로, 머록족을 사악한 괴물로 이분화해 주인공인 ‘시간여행자’로 하여금 그들을 물리치도록 했다.
때문에 영화는 흥미진진한 2시간짜리 오락물이 됐지만, 결국 19세기 귀족계급(지배계급)을 옹호하면서 작가의 깊은 통찰력을 상실해버렸다.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후 이번에는 작가의 증손자가 ‘타임 머신’을 영화로 만들었다. 감독인 사이먼 웰스는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의 공동 연출자였다.
증손자는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답게 만화적 상상력을 더욱 증폭시키고, 특수효과를 발휘했지만 아쉽게도 증조부의 소설보다는 펄 감독의 영화를 오마쥬(숭배)하는 쪽을 선택했다.
소설 속의 관찰자인 주인공 ‘시간여행자’를 하트겐(가이 피어스)이란 천재 과학자로 설정하고 그가 타임 머신을 발견하게 된 동기 역시 강도에게 살해 당한 사랑하는 약혼녀를 살리기 위한 것으로 구체화했다.
영화는 약혼녀를 죽음에서 구해낼 수 없는 하트겐을 통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인간이 과거를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그리고는 조작실수를 통해 하트겐을 달이 지구에 충돌한 2070년의 지구에 잠시 머물게 하고는 80만년 후로 보낸다.
감독은 수퍼컴퓨터 복스를 등장시켜 인류역사를 보여주고 미래로 가는 시간 변화를 지구의 지형변화나 자동차, 거리의 패션, 가구의 변화를 통해 시각화하는 재치를 발휘한다.
그러나 엘로이족과 머록족에 대한 선악의 이분법이나 모든 문명이 파괴된 황폐한 지구, 머록족의 흉악한 형상이 낯익다.
하트겐이 정의감에 불타 머록족에 대항하는 영웅주의도 새삼스럽지 않다.
머록족의 우두머리인 우록(제레미 아이언스)을 단순한 악마주의의 표상으로 희화해 인류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포기했다.
그래서 원작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너무 헐겁고, 원작을 모르면 사람들에게는 조금 독특하거나, 아니면 80만년 후란 설정부터 황당한 SF오락물에 머물고 말았다.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의 한계일까. 29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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