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나의 숙명…고통은 나의 벗막막하다. 그리고 모르겠다. 혼자서 때로는 여럿이 모여서 소설 쓰기에 일생을 던진 것에 수없이 물어서 괴로웠던 화두였다.
그런데도 아직 단호하고 명백한 대답을 얻어낼 수 없었다. 등산하는 사람에게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물었을 때,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른다는 대답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소설 쓰기의 경우, 그런 차용은 미진하거나 과녁을 빗나간 대답일 듯하다.
내게 왜 소설을 쓰느냐고 힐책의 어조로 윽박지르는 듯한 질문을 맨 먼저 던진 사람은 어머니였다.
물론 딱 부러지는 대답을 못했었는데, 그땐 천착도 경륜도 없는 설익은 나이였기 때문이라는 자위가 있었다. 그런데 환갑을 서너 해까지 넘긴 이 나이까지 도달했음에도 내가 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인지 아직 모른다.
이를테면 소설 쓰기를 치열하고 끈질기게 계속한다면, 세속적으로 근근히 살아 남을 수는 있겠지만, 이빨을 앙 물어도 돈 되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매우 확실해졌다.
혹은 가문의 법통이나 줏대를 세워나가는데 명분을 보태주거나, 사회적으로 또는 가족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란 것도 확실해졌다.
명성을 얻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 역시 한 순간 화려했다가 소멸하는 불꽃놀이와 같아 영속성이나 보존성이 뒤떨어진다.
남들처럼 퍼올려도 퍼올려도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슴속에 사무치는 회한이나 비장함이 간직된 것도 아니다.
패기 넘치는 지성이나 심오한 직관은 아예 없기에 학문적인 탐구라면 어불성설이고, 사랑의 추구 혹은 예술행위라면 너무나 미흡한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뒤에서 밀어붙이는 도도한 물결에 곧잘 딴죽 걸리거나 빈축 사고, 앞 물결에 따귀 맞기 일쑤여서 작업에 대한 성취감도 잠시 잠깐이다.
고고하게 살기는 너무나 어렵고, 세속적인 성취감을 획득하기에도 더욱 어렵다.
그래서 생각은 언제나 구름 위에 있어도 몸뚱이는 개천 바닥에 떨어져 있음이 분명해졌다. 그처럼 이상과 현실이 빚는 갈등의 수렁에 양다리가 빠져 있어 몸 둘 바를 모른다.
게다가 부지불식간에 지식인의 범주에 끼어 들어 무슨 화끈한 일이 닥치면, 결과에 대한 동물적인 확신이나 신념을 가지고 과단성 있게 밀고 나가려는 투지와 기백은 마모되고 말았는데, 의협심 한가지는 남달리 강해 자신이 괴롭다.
사회의 병리 현상에 예민하게 대응하고 곧잘 분개하지만, 그렇다고 고결하고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항상 뭔가 애매하다.
옥탑방에 들어앉아 제딴엔 고독과 상실, 운명과 경이로움에 대해 전광석화와 같은 언어로 줄곧 뭔가를 쓰고 있는데, 그 결과물이 우호적인 손길과 마주칠 수 있을 것인지 자신도 측정할 수 없다.
자신에게는 휴식의 수단인 담배와 술, 그 유독성 물질의 간단없는 섭취로 몸뚱이는 낙엽처럼 지쳐 있고 병듦에 대한 공포감은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감수성 혹은 상상력의 그릇이 고갈될까 시를 읽고, 영화 보고, 그림 보고, 여행하고, 심지어 한밤중의 패션 프로까지 시청하는 노심초사를 겪고 있지만, 이렇다 하게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과연 허우대 건장하게 갖춘 한 남자가 일생을 무자비하게 투자할 만큼의 가치와 명분이 여기에 존재하는 것인지 줄곧 의구심을 가져왔다.
한때, 문학 혹은 소설 쓰기와의 결별을 결심했던 적이 있었다. 결심을 굳힌 다음, 변방이라 할지라도 낯선 세상으로 무리 없이 편입되기를 바라며 그들의 삶의 바탕과 방식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세심하게 관찰하고 분석해보려 하였다.
급기야 돈 벌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려는 사람도 있었고, 직업의 전환을 알선하려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화려함을 예고하는 그 가능성들은 일탈에 대한 제어력과 감시기능이 완벽하게 갖춰지고 장착된 족쇄나 계측기처럼 규범과 속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그것들을 삼엄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것이 나에겐 도무지 익숙하지 못했고, 선뜻 동의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니었다.
그것은 해체의 불안감이 폭발적으로 감지되는 지뢰밭일 뿐이었다. 그래서 1년 남짓한 동안의 배회 끝에 나는 열적은 표정으로 풀기 어려운 퍼즐게임에 몰두해 있는 문학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을 바꾸고 말았다.
문학을 하기 위해 겪게 되는 광범위한 고통의 최면도 익숙해지면, 피둥피둥하고 온전한 살점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한한 자유가 존재하는 곳에 고통이 없으면 그 자유가 빛나지 않는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가슴에 품고 있는 간절한 소망이 있고, 그래서 어딘가 소중한 사람들, 술과 담배에 절어 있지만 심장 한 가지는 벽돌보다 단단해서 깨어질 줄 모르며, 깨끗한 영혼을 가지려고 끊임없이 애를 끓이는 사람들 속에 내가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는 소망과 위로의 예감이 종교적인 흡인력으로 나를 끌어당긴 것이 분명했다.
창작생활에서 무한대로 열려있는 자유에 나는 마취되어 있다. 중독은 의지로도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명이 있다.
궁핍 혹은 상대적인 빈곤으로부터 속시원하게 해방되고 말았음에 대하여, 세금 낼 것을 거짓 신고하지 않았음에 대하여, 비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서 누구든 비판할 수 있는 배포에 대하여, 분수 이외의 것을 넘보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현란한 세상 위에 놓여진 허위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슴 에는 심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도 무한한 명분과 기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음에 대하여, 사랑할 수 있음에 대하여, 만나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는 가슴이 아직도 내게 남아 있음에 대하여, 남이 웃고 있을 때 울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남의 글에서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을 발견하고 무릎을 치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낯선 나라 낯선 땅 낯선 마을에서 물동이를 이고 가는 촌부의 눈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음에 대하여 나는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
때문에 마루바닥을 훔치다 만 걸레처럼 이것을 호락호락하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절대적이다.
문학 행위를 깔아둔 지 오래된 카펫을 들춰보는 일과 비교해 봄직하다.
우리들 일상의 삶들이 배설해서 밑바닥에 가라앉은 고통과 갈등과 비통함의 먼지들 혹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무심코 밟고 다니는 사소한 그것들을 들춰내어 그것의 명분과 의미를 되새김질하고 비통해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이문구씨의 ‘관촌수필’이나 신경림씨와 김기택씨의 시들은 그래서 우리들을 울게 만든다.
두 눈 부릅뜨고 이빨을 갈아 물어도 온전하게 살아 남을 것 같지 않은 세상에 사람을 울게 만들 수 있는 기량과 능력을 소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 받을 문학적 역량이며 수확인가.
그런 분들을 비교적 근접한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도 흡족하다.
우리들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산골 시골 마을에는 곰배팔이, 절뚝발이, 육손이, 언청이와 같은 선천성 질환으로 불구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둘씩은 꼭 끼어 살았다.
그들은 필경 모자라는 반편 취급을 받거나, 아이들의 조롱감이 되곤 하였다.
그런데 마을에 위급하거나 애꿎은 사건이 발생하여 사람을 불러와야 할 일이나 이웃 마을에 그 사실을 통기해야 할 때, 혹은 궂은일을 도맡아줄 사람이 필요할 때 마을의 공동체는 십중팔구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또한 평소에도 내 잘났다고 떠벌린 적이 없었던 그 불구자를 지목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칼날 같은 바람이 갈개치는 혹한 속이거나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이거나 상관하지 않고 군소리 한 마디 없이 궂은 일을 치러내곤 하였다.
내 소설이 세상 속으로 나가서 소금이나 향유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바람이다.
그러나 어쩌면, 탄탄한 문장과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미끄러지듯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고, 어린 시절 마을에서 살았던 곰배팔이나 절뚝발이가 그랬던 것처럼 평소에는 반편의 취급을 당하지만, 자신에게 부여된 궂은일을 군소리 한 마디 없이 치러 나가려는 의지를 가진 소설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런 일인가.
김주영
●연보
▲1939년 경북 청송 출생
▲1962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71년 '월간문학'신인문학상에 '휴면기'가 당선돼 등단
▲창작집 '도둑견습''겨울새'장편소설 '객주''천둥소리''활빈도''화척''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홍어''멸치'등
▲한국소설문학상(1983) 유주현문학상(1984)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93) 이산문학상(1996)대산문학상 (1998)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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