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아이가 없어 외로워하던 노부부가 나무 신령님께 열심히 빌어 하륵이란 아이를 얻는다.나무에서 떨어진 알에서 나온 하륵은 이슬만 먹어야 한다.
하륵과 할머니, 할아버지는 행복하게 산다. 그런데, 하륵이 어느날 쌀밥을 먹는 바람에….
극단 ‘뛰다’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하륵 이야기’는 신화의 색채를 띤 아름답고 정겨운 인형극이다.
잘 다듬어진 형식과 기발한 아이디어, 참신한 극적 구성으로 전하는 독특한 이야기가 포근한 감동을 자아낸다.
장면 하나하나의 어여쁨이 꼭 그림책을 보는 것 같다.
아이들은 몸을 잔뜩 앞으로 뺀 채 무대에서 눈을 뗄 줄 모르고, 어른들은 흐뭇한 웃음을 띤 채 가끔 낮게 탄성을 지른다.
하륵은 북청사자놀음의 사자 같기도 하고 해태 같기도 한, 퉁방울 눈을 지닌 귀여운 아이다.
배우가 하륵 인형을 조정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지로 만든 하회탈 비슷한 가면을 쓰고 있는데, 그 표정이 퍽 정답다.
배우들은 악사로, 진행자로, 극중 인물로, 인형 조정자로 여러 역을 자연스레 오가면서 때로는 춤사위를 닮고 가끔 정지 화면처럼 멈추기도 하는 몸짓으로 극의 흐름을 적절히 여미거나 풀어놓는다.
비닐봉지, 생수통, 빈 병, 바가지, 양푼 등 일상의 평범한 물건들로 다양한 효과음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신문지 한 장을 접거나 펼치는 것으로 코끼리나 인어, 슈퍼맨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한 배요섭은 상상의 세계를 시각화하는 매끄러운 솜씨를 보여준다.
쌀밥을 먹고 끝없는 배고픔에 시달리게 된 하륵이 비행기ㆍ자동차ㆍ기차를 삼키고, 해와 달을 삼키고, 악사까지 꿀꺽 삼켜버리는 장면은 놀랍고 환상적이다.
하륵이 뭐든지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것에 맞춰 무대 바닥을 덮은 천이 천천히 부풀어 오를 때 꼬마 관객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연극은 그림자극으로 마무리된다.
배고파 우는 하륵을 달래기 위해 스스로 하륵에게 먹혀버린 할머니, 할아버지가 세상 모든 것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하륵의 뱃속 집에서 예전처럼 뜨개질하고 신문을 읽으면서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는 모습이 둥그런 스크린에 비칠 때, 작은 불빛처럼 스며드는 가슴 아프고도 따뜻한 감동은 마음을 덥혀준다.
한 편의 동화 같고 놀이 같기도 한 이 연극은 어른 아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정성껏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31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계속된다. 출연 윤진성 최재영 황혜란 명현진 강필석. 평일 오후 7시 30분, 금ㆍ토 오후 4시 30분, 일 오후 3시, 월 쉼.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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