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속으로] 郵征總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속으로] 郵征總局

입력
2002.03.27 00:00
0 0

1884년(고종21년) 3월27일 한국 최초의 근대적 체신행정 관서인 우정총국이 문을 열었다. 이로서 중세 이래의 체신 수단이었던 역참제(驛站制)가 역사의 뒤꼍으로 물러나고 한국에도 근대적 통신 시대가 열렸다.우정총국 총판(總辦)으로는 병조참판 홍영식이 임명됐고, 박영효 등 사사(司事) 15명이 사무를 나눴다. 조선 정부는 그보다 두 해 전인 1882년 근대적 통신 제도를 들여오기 위해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에 딸린 관청으로서 우정사(郵程司)를 설치한 바 있으나, 본격적 사업에는 미처 손을 대지 못했다.

우정총국을 설치한 뒤 정부는 일본 영국 홍콩 등과 우편물 교환협정을 체결하고 그 해 11월17일 근대적 우편제도의 사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해 12월4일 서울 견평방(堅平坊: 종로구 견지동)의 청사 낙성식 현장에서 갑신정변이 터져 12월9일 우정총국이 폐쇄됐고, 1895년 6월 통신국 소속으로 24개의 우체사(郵遞司)가 설치될 때까지 10년간은 다시 옛 제도인 역참이 통신 수단으로 사용됐다.

우체사는 1900년까지 그 수가 38개로 늘어났지만, 1905년 일제의 강압으로 한일 통신합동조약이 체결돼 조선의 통신권은 일제로 넘어갔다. 우체국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1949년 지방 체신관서 설치법이 공포된 이후부터다.

19세기 말의 한국인들에게는 공공 기관이 사적인 통신을 떠맡아준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한 세기 이후 종이편지라는 것 자체가 변두리로 밀려날 줄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하기야 불과 이십년 전까지만 해도 휴대폰이나 인터넷은 일반인들의 상상력 바깥에 있었다. 21세기가 끝날 때쯤의 대중적 통신수단이 어떤 형식일지 역시 우리들의 상상력 바깥에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