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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쥘 르나르 ‘자연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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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쥘 르나르 ‘자연의 이야기들’

입력
2002.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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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근대화라고 불리는 세계자본주의의 확대 과정이 인간의 심성에 새겨놓은 흔적 가운데 하나는 심화된 인간중심주의다.인간중심주의의 심화는 곧 자연의 소멸이다.

특히 한국처럼 자본주의의 확대 속도가 어지러울 정도로 컸던 사회에서는 자연의 소멸 속도도 거기 비례해 컸다.

기자의 유년 시절에만 해도 서울 거리에서 말이나 소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집의 화단에는 나비와 벌이 날아들었고, 비 내린 오후에는 지렁이와 달팽이가 보였다.

그 시절의 어린이들은, 농촌 아이들만이 아니라 도시 아이들도, 귀뚜라미 여치 사마귀 매미 생쥐 벼룩 제비 참새 무당벌레 따위와 함께 살았다.

오늘날, 사람의 거주 공간은 거의 온전히 사람만의 거주 공간이다.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들은 오히려 그 거주 공간을 더욱더 인간중심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오늘날의 어린이들은 소나 돼지나 토끼나 양을 오로지 식용 고기의 형태로만 경험한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살았던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의 ‘자연의 이야기들’(박명욱 옮김ㆍ문학동네 발행)을 읽으며 기자는 나른한 시간여행을 경험했다.

그것은 단지 유년기로의 시간여행이 아니라 기자가 세상에 나기 전 아득한 옛날로의 시간여행이었다.

그 여행의 끝에서, 새들과 짐승들과 벌레들과 꽃들과 나무들은 제각기 지구의 온전한 시민권자로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저자가 이 책의 첫번째 글에서 ‘이미지의 사냥꾼’을 자처했듯이, ‘자연의 이야기들’은 동물과 식물들에 대한 온갖 이미지들로 빛난다.

르나르가 그 이미지들을 주로 채집한 곳은 자신이 읍장을 지내기도 한 쉬트리레민이라는 시골 마을이다.

르나르는 자신이 관찰한 자연계를 80여편의 산문시에 담아놓고 있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포복절도할 웃음을 자아낸다.

예컨대 “고래는 입 안에 자신이 코르셋을 만들 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허리둘레라는 것이!”(‘고래’)라거나 “그러나 그녀는 그토록 가는 허리 때문에 언젠가는 탈이 나고 말 것이다”(‘말벌’) 같은 대목이 그렇다.

르나르의 상상력 속에서 나비는 “반으로 접힌 사랑의 편지”가 되고, 벼룩은 “용수철이 달린 담뱃가루”가 된다.

바퀴벌레는 “시커멓게 벽에 들러붙은 수많은 열쇠 구멍들”이고, 곤들매기는 “늙은 산적의 옆구리에 감춰진 단검”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봄의 전원으로 나가 보라. 자연이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의 옷을 입고 당신을 기다릴지니.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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