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출범과 더불어 500g도 안되는 축구공의 회전이 지구를 움직여왔다.'축구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경전처럼 되뇌이는 말이다.월드컵은 축구를통해 세계화를 촉진하는 동인으로 작용 해왔지만 그 밑바닥에는 강력한 민족주의가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냉전 시대의 이념과 체제대결보다 국가와 민족간 경쟁의 요소를 더욱 많이 내포한 국제스포츠제전이 바로 월드컵이다.이는 축구의 특성에서 기인한다.축구는 다른 어느 종목에서도 찾기 어려울 만큼 관중을 대상으로 한 감정이입의 정도가 큰 마법의 스포츠이기 때문이다.월드컵이 민족의 정체성이나 공동체 의식을 환기시켜주는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의례로 자리잡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월드컵은 이처럼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국가나 민족간의 대립이나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그와는 정반대로 상호이해와 공존을 촉진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 개막을 2개월 여 앞두고 남북간에 새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다. 25일 남북한은 임동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가 특사자격으로 4월3일께 방북한다고 동시에 발표했다.
시기상 임 특사의 방북결정에 월드컵과 평양에서 열리는 북한의 아리랑축전(4월29일~6월말)도 무시 못할 요소로 작용했다는 생각이다.
남북고위급인사의 월드컵 개막식 및 아리랑축전 교차참석도 논의대상으로 거론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월드컵과 아리랑축전 기간에 남북고위인사의 교차방문이 이루어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도 성사된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을 것이다.임 특사의 방북이 어떤 결실을 거둘지는 미지수지만 체육분야의 교류가 활발해지길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무엇보다 월드컵의 해에 '통일축구의 부활'은 기자만의 염원이 아닐 것이다.1990년 남북 축구대표팀의 평양·서울 교환경기(통일축구)에서 우리는 민족동질성 회복의 가능성을 확인했었다.통일축구는 일제강점기 경평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1933년 경성(서울)과 평양간에 이뤄진 축구교류는 이민족의 압제에 대한 저항의 수단이기도 했는데 분단 이듬해인 46년까지 계속되다가 중단됐다.통일축구 부화른 그래서 분단의 장벽을 뛰어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부산 아시안게이(9월29일~10월14일)에서 남북단일팀 구성이다.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43개 회원국중 북한을 제외한 42개국이 이미 참가의사를 부산아시안게임조직위에 통보해왔다.남북한은 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대회와 같은해 일본 지바의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단일팀으로 출전한 바 있다.그러나 과정을 통해 체육교류가 단순히 남북의 경기력을 과시하는데그치는 거이 아니라 민족은 하나임을 각인시켜 준 계기감 됐음을 우리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기창 월드컵기획단장 겸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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