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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현 소설집 '붉은 소묘'…'예술과 구원' 화두 古風의 언어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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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현 소설집 '붉은 소묘'…'예술과 구원' 화두 古風의 언어로 질문

입력
2002.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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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모르는 연습으로 그려 없앤 수백 장 저승 시왕초(十王草ㆍ불화의 밑그림) 연습본 속 권속들로만도 염라부가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사하촌 주점에서 밤늦도록 곡차 공양이나 치르다가 뒤늦게 붓을 쥐었다.’민경현(36)씨의 두번째 소설집 ‘붉은 소묘’(문학동네 발행)는 향 냄새가 밴 문장으로 어지럼증이 느껴진다.

첫 소설집 ‘청동거울을 보여주마’보다도 향내가 더욱 짙어졌다.

요즘 좀처럼 보기 드문 문장을 쓰는 젊은 작가로 각광받았던 작가는, 새 창작집에서도 더욱 철저하게 예술혼에 대한 탐구과 예스러운 언어 구사에 매달린다.

단편 ‘너의 꿈을 춤추련다’가 그렇다. 그는 첫 소설집 ‘내영’과 ‘꽃으로 짖다’의 주인공 석이를 다시 등장시켜 예술의 의미를 묻는다.

석이는 불화를 그리고 싶어했지만, 스승은 나뭇결을 닦고 아교풀을 먹이는 일만 시켰다.

스승 몰래 비구니의 승무를 그린 석이의 그림이 미술대전 우수작으로 선정됐지만, 그림의 모델은 전신이 마비되는 파킨슨증후군으로 세상을 떠났다.

예술혼의 진정성에 대한 작가의 물음은 작품 속 스승의 중얼거림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드러나도 부끄럽지 않은 게 꽃밖에 없어서” 스승은 꽃단청을 그린다고 했다.

이렇듯 불교적인 상징에 기대어 치열한 장인정신을 탐구하는 작가의 실험은 화가 석이가 또다시 등장하는 ‘사제와 나그네’, 자신이 그린 그림 안으로 입적해 버린 노화승(老畵僧)을 묘사한 ‘스타바트 마터’에서도 계속된다.

단편 ‘말하는 벽’은 조금 다른 시선을 취한다.

무엇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기억할 수 없는 나와 기억의 감옥에 갇힌 탈옥범 최갑수의 대화는 관념적이다.

“자유란 앞으로 나아갈 권리라기보다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할 의무”라는 탈옥범의 얘기는 작가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주문(呪文)으로도 읽힌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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