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공동체가 유능하고 유덕한 정치지도자를 맞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히 어려운 일인 듯하다.훌륭한 지도자의 전범으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이 철인통치론을 주장하고 공자가 군자통치론(유덕자 통치론)을 제창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이상은 현실에 옮겨진 적이 없다.
실제 시도된 경우에도 제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현대 민주주의의 경우 국민주권론을 표방하지만, 대의민주제의 원칙에 따라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인물에게 정치를 위임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이다.
하지만 현대의 대의민주국가 역시 훌륭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일말의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민주화 이후에 느끼는 환멸과 실망은 무엇보다도, 민주투사로 정치경력을 쌓아 왔던 야당 출신의 두 대통령이 전임들과는 달리 ‘사심 없이 공공선을 추구할 역량과 동기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회의적인 답변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는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 선진 민주국가에도 나타나는 현실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무리한 국방비 증액 정책은 선거기간 동안 그를 후원해준 이익단체의 로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기 때문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현재 ‘국민경선제’를 도입해 ‘대세론’을 주장하는 후보와 ‘대안론’을 주장하는 후보가 접전을 벌이고 있다.
언론과 국민의 관심 역시 거기에 쏠려 있다.
그러나 국민경선제라는 민주적 실험이 정치인들의 순수한 민주적 동기보다는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도입되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민주당은 자신들에 대한 국민의 전반적인 지지가 저조하고, 나아가 예상되는 야당 대통령 후보에 비해 자당 후보들에 대한 지지가 열세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바로 이러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곧 여당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국민경선제라는 제도를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경선제는 사실상 대통령 후보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야당인 한나라당에게 대단히 큰 압박이라는 점에서 일단 여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야당이 국민경선제를 안 하면 안 해서 비민주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고, 한다고 해도 현재로서는 일종의 통과의례에 불과한 싱거운 게임으로 끝날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국민적 지지나 관심을 끌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경선제는 여당에게도 ‘양날의 칼’이다.
여당은 이를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치를 경우, 떨어진 국민적 관심과 지지도를 일거에 만회할 수 있다.
반면 국민경선제를 치르는 과정에서 정치자금이나 인력동원 등과 관련해 부정이나 잡음이 일게 되면, 회복할 수 없는 파탄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국민경선제를 일단 대과 없이 치를 수 있다면, 대통령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의 민주화에는 일대 전진이 아닐 수 없다.
여당이나 야당이 앞으로도 아무런 명분 없이 국민경선제를 폐지하기에는 커다란 부담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당이 순수한 민주적 명분보다는 자신들의 재집권 가능성을 높인다는 정치적 계산(실리)에 의해 국민경선제를 채택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민주적 명분이 정치판을 압도해 나아갈 것이다.
또 여당의 대선후보들은 국민경선제가 순조롭게 치러지지 못할 경우, 집권당으로서 권력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이고 민주적 제도인 국민경선제를 망쳐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도 예상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여당의 집행부는 국민경선제를 엄정하게 관리하고, 대선 후보자들은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겨룬 뒤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며, 시민들 역시 보다 공정하고 비판적인 입장에서 국민경선제에 참가하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강정인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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