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미국을 다시 본다] 제1부 팍스 아메리카나(2)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미국을 다시 본다] 제1부 팍스 아메리카나(2)

입력
2002.03.26 00:00
0 0

(2)정치이념의 전통과 신보수화 물결미국의 정체성은 정치이념, 테크놀로지, 영토의 확장 등 3가지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 테크놀로지는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뜻하고, 영토의 확장은 서부시대 때부터 계속돼 온 개척과 지배의 욕구다.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자유민주주의로 대변되는 정치이념은 미국인들이 세계에서 리더십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미국은 근본적으로 문화전통의 공유가 아니라 정치적 조직화를 통해 형성되고 유지돼 온 국가다. 헌법은 모든 질서와 합리성의 기초로서 애국심의 근원이자 시민종교적 신앙의 대상이다.

헌법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정치이념은 '상징의 체계'로서 정치행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정책 수립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정치공동체를 통합시키는 기능을 담당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미국의 이념적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전통의 ‘실용주의적’ 결합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 자유와 평등, 권력의 집중과 분산, ‘시장’(market)과 ‘포럼’(forum), ‘지혜’(wisdom)와 ‘동의’(consent), 민주적 정당성과 애국심, 전통과 개혁 등 상반된 요소들을 조화시키고 개인의 자율성과 집단적 유대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의 실현은 상충하는 이해와 요구들 간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제도 장치와 정치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미국의 전통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미국을 지탱하는 이념적 힘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 그리고 이를 역사를 통해 실현시켜 왔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현실 속에서 배반된 사례는 많다.

정권의 교체와 무관하게 정치 현실주의가 미국의 대내외 정책결정을 지배하는 강력한 논리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과 경제적 불평등, 냉전자유주의의 획일성, 군사력 위주의 세계전략, 군산복합체와 파워엘리트, 개입주의가 초래한 전쟁과 음모 등이 미국 역사와 현실의 숨길 수 없는 단면들이다.

정치 현실주의는 안보와 국부의 증진이라는 국가이익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 논리에 따라 이념은 정치적 삶의 기초가 아니라 수단적인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고, 상황논리에 따른 임기응변과 권력정치, 기득권 세력의 전횡도 쉽게 용인된다.

특히 냉전시대의 정치현실주의는 경제력과 군사력이 모든 문제 해결의 관건이라는 인식을 보편화했다.

그러나 ‘팍스 아메리카나’의 실현은 물리적 힘의 증대뿐만 아니라 미국의 내재적 비판과 개혁능력에 의존한다.

정치이념의 전통에 호소했던 시민권운동과 반전운동 등은 미국 사회의 자기 성찰과 개혁에 영향을 주었으며, 결과적으로 미국의 리더십 강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념과 현실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이념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그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은 미국의 위상을 높이는 동력으로 작용해 왔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점증하는 상황에서 나타난 미국의 신보수화 경향은 미국 내의 경제·사회적 문제들의 누적에 따른 위기감과 연관된다.

경제불황, 그리고 인종 및 계층간 갈등 등 사회통합의 문제들이 불안감을 야기하면서 이념적 ‘균형’이 상실되고 보수화를 재촉한 것이다.

여기에다 이념의 균형 상실에 편승하여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논리를 절대화하려는 신자유주의가 도덕적 보수주의와 결합해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사상적 기초로 자리잡게 됐다.

이른바 미국의 신보수화 또는 신우파(New Right)의 득세는 신자유주의, 보수적 공동체주의, 정치현실주의의 상황적 결합에 의해 촉진돼 왔다.

시장 메커니즘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현대적 형태인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이후 복지국가 모델을 비판하면서 형성된 신우파의 핵심 사상이다.

그런데 신우파의 틀 속에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철저한 개인주의와 상반되는 도덕적 보수주의 또는 공동체주의가 공존한다.

논리적으로는 신자유주의와 도덕적 보수주의는 별개의 관심 영역에서 전개되는 상관성 없는 사조들이다. 그러나 상황적으로 현재 미국에서 양자는 동반자의 관계를 갖는다.

즉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의해 파생되는 사회적 부담과 폐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책임과 권한 밖의 ‘전정치적(pre-political)’ 사회 영역에서의 안전망 구축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한 사상조류가 가족과 교회를 포함한 다양한 공동체들의 기능을 강조하는 보수적 공동체주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공동체주의는 결과적으로 이념상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보수화 경향이 심화할수록 정치현실주의는 설득력이 강해진다. 신자유주의적 정치는 강자의 이익을 보장하는 ‘사이비 타협’만을 산출하게 되고, 그에 따라 정당성의 위기는 더욱 심화한다.

보수적 공동체주의는 애국심을 미덕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자국우월주의와 대외적 배타성의 확산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키아벨리와 홉스적인 세계관으로 무장된 정치 현실주의자들의 행동과 영향력의 반경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더욱이 현재의 미국과 같이 ‘안보’가 지고의 목표로 설정되는 상황에서는 “힘이 정의를 만든다(Might makes Right)”라는 수사(rhetoric)가 확고한 정당성의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신보수주의는 논리적 설득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상이한 이념적 파편들의 조합이다. 또 신보수주의는 합리적 정당성보다는 정서적 호소력에 의존한다.

상충되는 이념들을 묶는 힘은 수사에서 비롯되며, 수사의 힘은 위기 의식과 불안감이 팽배할수록 더욱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미국의 보수화는 전세계적인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다.

현재 미국의 지식인 사회와 언론에서는 미국의 규범적 자기이해와 현실의 괴리, 그리고 그 사이의 균형에 대한 논의가 점증하고 있다.

특히 9·11사태 이후 개인의 권리들을 규제하는 법안들과 정책들을 둘러싸고 논쟁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 비판세력은 위기 상황에서의 처방이 ‘정상 이념’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대체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 같은 비판세력의 노력은 국제적인 여론의 압력과 함께 신보수화를 견제하는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다.

물론 미국의 신보수화 현상이 자유주의 및 진보 세력의 이념적 헤게모니 상실과 함께 초래됐기 때문에 이들의 반격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미국의 리더십이 일방적인 힘의 행사에 의해 보장될 수 없으며, 독자적인 힘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국제적인 협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미국 힘의 패러독스’에 대한 인식이 미국 안팎에서 확산될 것은 분명하다.

유홍림 (柳 弘林)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아메리카 핸드북 / '보수의 딜레마'등 용어풀이

보수의 딜레마는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어김없이 빠지는 이념의 혼돈이다.

가령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면 공화당 후보가 될 수 없고, 반대하면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이길 수 없다”는 정치 공식이 이에 해당한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1990년 낙태 찬성파 루이스 설리반을 장관으로 기용했다가 종교적 우익(Religios Right)의 반발로 곤욕을 치렀다. 혼란은 현 보수연합에 극우파에서 구 민주당 지지층까지 잡다한 이념 집단이 모여 있기 때문에 비롯된다.

깅그리치 혁명은 94년 중간선거를 계기로 공화당이 다수파 정치기반을 확립한 것을 뜻한다. 공화당은 아이젠하워 이후 40년 만에, 20차례 선거 끝에 만년 소수파를 벗어나 하원 과반수를 점했다.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쐐기와 자석(Wedge & Magnet)이라는 공세적 전략으로 민주당 지지층을 분열하고 보수 각 세력을 결집, 공화당 판 뉴딜연합을 완성했다.

복지예산 개혁 등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10개 공약은 미 정치사상 공화당이 하원 선거에서 처음 내놓은 전국 선거공약이다.

보수연합에는 89년 TV 전도사 팻 로버트슨이 설립한 기독교 연합(Christian Coalition) 등 종교계, 전국독립기업연맹(NFIB)과 세제개혁협회(ATR) 등 경제계, 전국총기협회(NRA) 등 이익단체와 월스트리트 저널 등 보수 언론, 미국기업연구소(AEI) 등 싱크탱크가 폭넓게 참여하고 있다.

‘수요회’라는 집회에 모이기도 한다. 기반이 풀뿌리까지 확대했으나 종종 자기분열적 모습도 노출한다.

온정적 보수주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선 전략이다.

우파의 지지로 후보가 된 그는 온건 보수와 부동표 이탈을 막기 위해 99년 5월 “가난한 사람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며 교육 등 민주당의 전통적 공약들을 적극 개진했다.

이 전략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참모 딕 모리스가 공화당 정책을 공세적으로 수용했던 삼각화(Triangulation)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다수파 보수세력의 공격적 노선을 공화당주의(Republican-ism)라고 불러 로버트 돌 총무 시절 소수파 타협주의 노선인 구 공화당주의(Republican-wasm)와 구분하기도 한다.

유승우기자

swy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