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위대하다.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한다. 시드니 포이티에와 동시에 상을 받았다. 항상 당신만 쫓아가면 이런 일이 생길 것 같다. 하느님의 축복이 시드니 당신과 함께 하기를.”(덴젤 워싱턴)“이 순간은 나 개인의 영광이 아니다. 내 앞의 수많은 유색 여배우들을 위한 순간이다. (진행자가 말을 끊으려 하자) 잠깐만요. 내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무려 74년이 걸렸잖아요” (할 베리)
강력한 후보 로셀 크로가 무례한 행동으로 표를 깎아 먹은 사이 할리우드의 모범생 덴젤 워싱턴과 할리우드 미녀 흑인 배우 할 베리는 아카데미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
여기에 시드니 포이티에가 공로상까지 수상, 사회자 우피 골드버그의 말처럼 올해 아카데미는 ‘온통 검은 색’ 잔치가 됐다.
“나는 흑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라며 흑인으로의 자부심과 연기자로서의 자존심을 자랑해왔던 덴젤 워싱턴(48)은 남자배우로는 두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됐지만, 평소처럼 차분한 말투로 소감을 이어갔다.
“대학 때 세계 최고의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니 학생들이 비웃는 듯 했다”는 덴젤 워싱턴은 ‘트레이닝 데이’에서의 노련한 구악 형사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덴젤 워싱턴은 이혼과 스캔들이 일상사인 연예계에서 스캔들 한 번 없이 85년 결혼한 탤런트 출신 아내, 4명의 아이와 단란한 가정을 꾸려와 ‘바른생활 사나이(Mr. Right)’로 불려 왔다.
오하이오주에서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할 베리.
미스 아메리카를 거쳐 1989년 TV 시리즈 ‘리빙 돌’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영화에는 91년 스파이크리의 ‘정글 피버’로 데뷔했다. 이후 ‘부메랑’ ‘플린트 스톤’ ‘X 맨’ 등에 출연하면서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그러나 90년대 초 남자 친구에게서 얻어 맞아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데다 뺑소니 사고 등으로 스캔들에 자주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몬스터 볼’에서 남편의 사형집행관이자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눈부신 연기로 그녀는 적잖은 스캔들을 딛고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두 사람이 수상을 한데는 미국 흑인 단체의 압력도 적지 않았다.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해티 맥대니엘이 유모 역으로 처음 여주조연상을 수상한 이래 73년간 수상자는 6명 뿐.
80, 90년대는 루이스 고젯 주니어( ‘사관과 신사’), 덴젤 워싱턴(‘글로리’), 우피 골드버스( ‘고스트’), 구바 구딩 주니어( ‘제리 맥과이어’)가 조연상을 수상했다.
감독에 대한 평가는 더욱 낮아 ‘보이즈 앤 후드’의 존 싱글턴이 최우수 감독상, 다큐멘터리상과 각색상에서 스파이크 리가 후보에 오른 것이 고작이었다.
전국유색인종지위협회(NAACP)등 흑인인권단체는 이런 사실을 각종 매체를 통해 알리는 것은 물론 코닥극장 앞에서도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해왔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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