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수’다.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평등하게 사는 게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본주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타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전면 거부하기보다는 그 명암(明暗)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국가안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그 누구도 병역의 의무를 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도 나는 많은 면에서 보수적이다.
극우가 자유주의자로 포장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유통되는 말을 살펴 보면 기가 막힐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나 같은 보수주의자가 ‘급진’ ‘혁신’ ‘과격’으로 통할 수도 있다니, 이게 말이 되나?
반면 ‘극우 파시스트’라 불려 마땅할 사람들이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하고 그 주장이 먹혀 들기도 하니, 이게 말이 되나?
그게 말이 되는 게 바로 한국 사회다. 한국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들 가운데 ‘이념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가장 심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념적 딱지는 오른 쪽으로 한 두칸 씩 이동시켜야 옳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功)을 아무리 인정해도 그가 3권 분립의 원칙과 법치주의를 파괴하면서 엄청난 인권탄압을 저질렀다는 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박정희 찬양’을 일삼으면서 자신을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가보안법 문제는 어떤가? 그걸 개정하거나 폐지하면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진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많다.
유엔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그 법을 개폐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겠는가?
국가보안법의 개폐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 충실한 것인데도 정반대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재벌은 어떤가? 재벌이 잘한 점도 많지만 잘못한 점도 많다. 그 잘못한 점을 비판해 바로잡자고 하면 그게 ‘급진’ ‘혁신’ ‘과격’이라고 선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세상에 이런 말장난이 없다.
정치는 어떤가? 모든 국민이 전면적 개혁을 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지역주의 정치, 돈 정치, 보스 정치를 끝장내야 할 것이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의 건설을 위해서다. 그런데 그러한 정치 개혁을 위한 주장에 대해 ‘파괴’ 운운하는 게 온당한가?
언어조작 더이상 안먹혀
이 모든 언어 조작에 국민이 속아 넘어갈까? 과거엔 속아 넘어간 적도 있었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극우 세력은 대통령마저 용공으로 몰 수 있을 만큼 원 없이 표현의 자유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은 그 어떤 문제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이제 더 이상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속내를 표현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점만큼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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