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초로 예정된 임동원 청와대 통일특보의 특사 방북은 한반도 긴장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2003년 한반도 위기설도 있지만 사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반도 긴장은 언제라도 가능한 상황이다.9ㆍ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방지하는 것을 대외정책에 있어서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특히 아프간 전쟁 이후 2단계 반테러전에 있어서 미국의 핵심 관심은 테러그룹과 우려국가(rogue states)의 대량살상무기를 방지하는 데 있다.
부시 대통령은 1월 29일 연두 국정연설에서 대량살상무기와 운반수단을 개발ㆍ보유하고 있는 이라크, 이란 그리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향후 반테러전이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방지하는데 초점을 둘 것임을 명백히 했다.
결국 9ㆍ11 테러사건 이후 북한은 냉전시기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악의 제국’으로 규정된 소련과 유사하게 악의 축으로 미국의 주적 국가로 부상된 셈이다. 만일 중동으로 향하던 미사일을 실은 북한 화물선이 미국에 의해 나포된다면 한반도의 긴장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임 특보의 방북은 한반도 긴장을 방지하는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된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 이후 양국의 긴밀한 조율 아래 이번 방북이 추진된 점을 감안한다면 한반도 상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했지만 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협상을 통해 핵무기 문제를 해결하고 냉전 종결을 이끌어낸 바 있다.
부시의 발언도 레이건의 발언에서 힌트를 얻어 냉전 아닌 반테러전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동시에 강력한 협상력 제고를 위한 계산된 발언이었다고 본다.
부시의 악의 축을 비롯한 일련의 북한체제에 대한 부정적 발언은 북한에게 미국이 반테러전의 다음 대상으로 자신을 겨냥하고 있으며 자신의 체제를 붕괴하려 할 것이라는 위기 인식을 심화시키면서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북한은 미국의 입장이 강경해지자 일본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 23일 납치 일본인 관련 행방불명자에 대한 조사사업과 일본과의 적십자회담을 재개할 것임을 발표했다. 더욱이 북한이 납치 일본인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그를 납치한 일본 적군파 관계자의 증언도 나왔다.
납치 일본인 문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북일 수교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괴선박 사건 등으로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는 북일관계를 크게 진전시킬 수 있는 사안을 북한이 먼저 들고 나왔다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현재 북한은 한국과 일본에 거의 동시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임 특사의 방북과 일본 행방불명자 조사 재개를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은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판단된다. 즉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진전시켜 미국의 강경한 예봉을 피하는 한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미국과 국제사회에 간접적으로 던지려는 의도로 판단된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북한의 대화 재개 메시지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의 햇볕정책에 응하지 않고 있는 북한을 비난해왔다. 따라서 이번 북한의 특사 수용은 북미관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북한인 당장 남한의 식량과 비료에 연연하고 미국의 예봉을 피하기 위해 특사를 수용했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이번 임 특보의 방북이 대량살상무기 해결의 실마리가 되기를 고대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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