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특사 파견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힘들여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마지막 승부수다. 김 대통령은 얼마 전 사석에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정체, 불안정해진 한반도 정세를 언급하면서 “평화를 확고히 구축하지 못하고 임기 말을 맞는 게 천추의 한”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같은 김 대통령의 절박한 심정이 이번 특사 파견에 깊게 담겨있다.현실적으로도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뭔가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 내년에 북미가 핵사찰을 놓고 격하게 대립할 가능성이 높고, 이를 방치할 경우 한반도의 불안이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 특사인 청와대 임동원(林東源) 외교안보통일 특보가 평양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논의할 우선적인 의제도 한반도 긴장 예방이 꼽힌다.
임 특보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평화와 안정 없이는 한반도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반도에 다가올 지 모를 위기를 방지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북한의 선미후남(先美後南) 정책을 선남후미(先南後美)로 바꾸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관계만 잘되면 남북관계는 저절로 풀린다”는 북한의 전략이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완강한 자세 앞에서는 실익이 없다는 점, 따라서 역으로 남북관계의 활성화를 통해 북미관계를 개선하자는 논리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임 특보가 갔다고 해서 북한이 당장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해소하라는 미국의 압박에 성의를 보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은 파종기를 맞아 비료가 필요하고, 식량 지원도 받아야 할 처지다.
경제적으로도 고단한 상황이며 내년에 강도가 높아질 미국의 압력에 정면으로 맞서기도 두려운 분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국내외적 상황으로 결국 북한은 남측이 제시하는 ‘당근’을 최대한 얻어내면서 한반도 긴장조성 예방이라는 명분에 동참할 것이라는 게 주변의 기대이다.
큰 방향이 합의되면 구체적 의제들은 의외로 순조롭게 풀릴 수도 있다. 주요의제로는 남북간 합의됐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 경의선 연결, 금강산관광 활성화, 개성공단 개발, 군사적 신뢰구축 등 5대 핵심과제가 지적된다.
또한 정치적 고려가 개입돼야 할 사안인 남북고위급 인사의 월드컵 개막식 및 아리랑 축전 교차참석,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도 논의될 문제들이다.
그러나 구체적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남측의 지원에 비해 북한의 성의가 충분치 않을 경우에는 대선국면에 접어든 국내 정치로 비화돼 특사파견은 격한 쟁점이 될 우려도 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