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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한일관계 비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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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한일관계 비약은 없다

입력
2002.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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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열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분 총리의 정상회담은 ‘월드컵 정상회담’이었다고 할 만 하다.두 나라가 공동 개최하는 월드컵 대회의 성공을 위해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으로 냉각된 한일 관계를 복원하는 길을 서로 모색한 회담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역사 문제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에 관해 이렇다 할 진전된 답안을 내놓지않아 실망스럽다.

우리 국민으로서는 일본은 역시 지난 역사의 과오를 반성하고 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협력과 평화의 새 시대를 열어가려는 의지가 없다는 인식을 재확인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적 한계라고 볼 수 있겠으나, 본질적으로는 일본이란 나라와 일본 국민의 역사관 내지는 대(對)아시아관이 고착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더욱 개탄스럽다.

이런 상황을 마냥 한탄하고 일본을 탓하고 있을 수 만은 없다. 우리와 일본은 역사적 유대는 물론이고, 연간 430억 달러가 넘는 교역량을 가진 관계다.

일본 입장에서도 한국은 연간 100억 달러가 넘는 무역흑자를 안겨주는 나라다. 그러나 경제적 상호의존보다 중요한 것은 두 나라가 동북아의 안정과 발전에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두 나라가 일찍이 없었던 공동 프로젝트인 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루는 것은 상호 이익에 이바지 할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안정에도 크게 도움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두 나라 모두 오랜 세월 쌓인 문제들에 얽매이지 않고 열린 자세로 상호 협력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안목에서 볼 때, 역사 문제는 물론이고 북한 문제 등 민감하고 이해가 엇갈리는 사안들은 끈기를 갖고 연구, 검토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방한에서 중요한 현안은 제쳐둔 채 국립국악원과 경주를 찾는 등 우리 문화를 감상하는 데 열심인 모습을 보였다.

22일 저녁 청와대 만찬 연설에서도 한국의 활짝 핀 개나리꽃을 칭송하는 문학적 수사를 사용했다.

이를 공연한 감상으로만 볼 수 있을까. 좀 더 여유를 갖고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가자는 메시지로 보고 싶다.

월드컵을 계기로 두 나라 관계는 변할 수 밖에 없다. 국가간 공식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접촉과 교류가 전에 없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이를 통해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고, 상대방을 대하는 자세도 알게 모르게 달라질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다시 국가간 관계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역사란 이렇게 변화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일 관계에는 혁명도 기적도 비약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차분한 생각으로 앞날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번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새삼 느꼈다.

월드컵 서울 개회식에는 고이즈미 총리가, 요코하마 폐회식에는 김 대통령이 참석한다. 이를 양국 관계 발전과 변화의 계기로 삼는 자세가 중요하다.

일본은 역사교과서 문제 따위를 가지고 다시는 한국이나 중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러나 우리도 일본의 고민과 사정을 헤아리는 넓은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한일관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평화와 우호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지혜라고 믿는다.

지명관 한림대 일본학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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