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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강을 어떻게 건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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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강을 어떻게 건너는가

입력
2002.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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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한테 무대는 움직이고 헐떡이고 격동하는 세계입니다. 배우는 이런 세계를 견뎌야 합니다. 견디지 못하면 무대는 입을 벌려 배우를 집어삼킵니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탄식하며 스스로 두 눈을 찌를 때, 그 배우는 눈이 찔리는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이 아픔을 견딘다는 게 무대에서의 견딤입니다.”극단 김동수컴퍼니가 공연 중인 ‘슬픔의 노래’에 나오는 대사다. 그 표현대로 세 배우 박지일(박운형 역), 남명렬(유성균 역), 방 영(민영수 역)은 무대를 견디는 힘을 보여준다.

연극 경력 20년이 넘은 이들의 탄탄한 연기 앙상블이야말로 이 작품의 힘이다.

거기서 분출되는 에너지와 중량감에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1시간 30분을 ‘견딘다.’ 그리고 묵직한 감동에 말을 잊게 된다.

소설가 정 찬의 원작을 오은희 각색, 김동수 연출로 무대화한 ‘슬픔의 노래’는 무겁고 어둡다.

80년 광주를 말한다. 그러나 광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유대인 학살현장인 아우슈비츠가 광주와 겹쳐지면서 광주의 슬픔이 보편적 인간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엄청난 폭력 앞에서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불완전한 인간의 비극을 드러내고, 구원의 빛을 찾아 대답없는 질문을 던진다.

폴란드 작곡가 구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가 광주와 아우슈비츠를 잇는다.

수난으로 점철된 폴란드 현대사와 아우슈비츠 희생자의 눈물을 쓰다듬는 이 곡을 두고 구레츠키와 한국 기자 유성균(남명렬)이 나누는 대화에 이 연극의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다.

“깊고 깊은 슬픔의 강이 언제나 역사 속을 가로지르고 있다. ‘슬픔의 노래’는 슬픔의 강이 흐르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 슬픔의 강가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술가는 살아남은 자의 형벌을 가장 민감히 느끼는 자,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빛은 슬픔의 강 너머에 있다. 이제 묻겠다. 슬픔의 강을 어떻게 건너는가?”

극중 박운형과 민영수는 광주의 상처를 안고 폴란드를 떠도는 인물이다. 박은 계엄군 출신 연극 배우이고, 민은 계엄군에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영화학도다.

박을 괴롭히는 것은 단순한 죄의식이 아니다. 오히려 살인 순간 느꼈던 핏빛 쾌감이다. 자기분열적 의식에 시달리던 박의 광기가 폭발하는 술집장면에서 박지일의 연기는 더없이 처절하다.

운명의 손에 붙들려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고뇌를 온몸으로 열연한다. 극중 박운형은 구원을 믿지 않지만, 배우 박지일은 무대에서 자신을 구원하는 진짜 배우로 보인다.

이 연극은 인간과 역사, 예술의 본질을 겨누는 무거운 화두다.

철학적, 문학적으로 빛나는 대사, 단단한 대본과 그것을 정직하게 실어내는 정통 스타일의 연출도 연극 고유의 힘을 새삼 확인케 한다. 5월 26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김동수플레이하우스. (02)3675-4675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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