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구이성-목소리를 높여라 / 내 피를 끓게하는 그 원시적 야성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구이성-목소리를 높여라 / 내 피를 끓게하는 그 원시적 야성

입력
2002.03.25 00:00
0 0

집에 텔레비전이 두 개다. 아이들 방에 하나 있고, 거실에 하나가 있다. 그런 만큼 아이들과 채널을 놓고 싸울 일은 없다. 그런데도 아내는 월드컵이 다가오기 전부터 걱정이다. 아마 그 기간엔 두 개의 텔레비전 다 채널이 축구에 고정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4년 전에도 그랬고, 8년 전에도 그랬다. 자명종을 맞춰 놓거나, 아예 잠을 안 자고 그 시간까지 깨어나 있다가 축구를 보곤 했다. 우리나라 게임만이 아니다. 빅 게임이든 스몰 게임이든 대회기간에 중계되는 거의 모든 게임을 보았다. 직접 운동장에서 뛰는 것은 못해도 눈으로 보는 축구경기의 흐름에 대해서는 세계의 모든 감독들을 코치할 정도라고 스스로 착각하고 산다. 착각인 줄 알면서도 행복해 한다.8년 전, 아직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기 전 회사를 다니던 때의 일이다. 그날 아침 우리나라의 게임이 있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자동차를 몰고 회사로 나갔다. 축구는 풀 타임으로 봐야 제 맛이다. 그런데 길에서 끼어들기를 하는 버스에게 자동차 앞부분의 펜더가 부딪쳤다. 다른 때 같으면 자동차를 세우고 짧은 시간이라도 시시비비를 가렸을 것이다. 옆에 함께 탄 회사 동료에게 물었다. 저 펜더 다 내 돈으로 갈자면 얼마 들어요. 라이트까지 15만원쯤 들 거라고 했다. 그럼 그냥 갑시다. 입장권 샀다는 셈 치고. 버스가 길 옆으로 자동차를 대는데도 중계시간에 몰려 찌그러진 차를 몰고 바로 회사로 왔다.

고등학교도 축구를 잘하는 학교를 나왔다. 오후면 선수들이 운동장에 나와 연습을 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눈이 자꾸 그 쪽으로 쏠리자 우리 눈높이에 맞춰 유리창을 선탠했다. 그러나 언제나 내 자리는 창가였다. 그 자리에만은 선탠을 뜯어버렸다. 서울에서 우리 학교의 경기가 열릴 때마다 강릉에서 친구들을 몰고 서울로 올라오곤 했다. 언젠가는 수업료도 나와 친구들의 버스비로 쓴 적이 있다.

월드컵은 세계적인 축제다. 그러나 축제 이전에 나는 축구 그 자체가 좋다. 그것의 원시적이고도 다이나믹한 힘이 좋다. 선수들은 지칠 줄 모르는 힘으로 그라운드를 누빈다. 힘찬 킥에 빨랫줄처럼 날아가는 공을 보노라면 내 마음에 쌓여 있던 스트레스까지 풀리는 기분이다. 그물을 가르는 멋진 골에서도 흥분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득점선수의 자기만의 독특하고도 화려한 골 세리머니도 한줄기 바람을 보는 기분이다.

푸른 그라운드에 양쪽 스물 두 명의 폭발적이고도 원시적인 힘이 오직 공 하나에 쏠려 있는 것이다. 기술도 작전도 원시적인 힘을 바탕으로 한다. 축구에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것도 경기 자체가 갖는 원시성의 정직함 때문일 것이다. 이제 얼마나 남았나. 나는 내 집 마당에서 벌어질 그 축제를 기다린다.

/ 소설가 이순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