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 내리는 저녁6시. 크고 작은 학원 80여 개가 몰려 신흥 학원가로 떠오른 서울 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는 방과후 학원을 찾는 각급 학생들로 북적거린다.이곳 은행사거리를 중심으로 ‘한글비석길’을 따라 2㎞ 안에 학원들이 집중돼 있다.
한 빌딩에 입시학원, 보습학원, 어학원 등 10개가 넘는 학원이 들어찬 곳도 있다. 학원을 찾는 학생들은 줄잡아 8만여명.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강북의 대치동’이라고 부른다.
▼학교ㆍ학원ㆍ교육열 삼박자 갖춰
불암산 서쪽 끝자락의 아파트촌을 배후로 하는 은행사거리 지역에 학원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여 전이다.
주위에 초등교 10개, 중학교 7개, 고교 5개 등 22개 학교가 모여 있다는 지리적 여건과 학부모들의 높은 교육열기가 이곳을 짧은 기간에 ‘강북의 대치동’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이곳 학원가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노원구는 물론 인근 도봉, 중랑, 강북지역의 학생들까지 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유명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선 예약 후 6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 좋은 신흥 학원가로 뿌리를 내렸다.
또한 최근엔 강남, 분당, 일산에서 시작된 조기 영어교육 바람에 편승, 유치원생까지 이곳을 찾고 있다.
▼유해환경 적고 학원비도 저렴
은행사거리 학원가의 장점은 주변에 유해환경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외국어고 입시생인 딸을 학원에 보내고 있는 김모(41ㆍ여ㆍ상계10동 D아파트)씨는 “집에서 가까운 노원구청 부근에도 학원이 있지만, 그곳은 유흥가와 가까워 이곳을 택했다”며 “대부분 학원들이 통학버스를 운행해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노원구청 관계자는 “귀가가 늦은 청소년의 안전을 위해 가로등 밝기를 높이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며 “마을버스 노선을 변경, 이곳을 지나게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강남 분당 등에 비해 저렴한 학원비도 장점이다. 중ㆍ고생 입시종합반의 경우는 강남과 비슷한 수준이나, 유아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들은 강남에 비해 50% 가까이 학원비가 싸다.
한 학원 관계자는 “건물 임대료나 시설투자비등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학원비를 낮출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밤 10시, 10대들의 피곤한 뒷모습
밤 10시가 넘어서자 학생들이 하나 둘씩 학원에서 빠져 나온다. 어지간히 지친 기색이다.
자정께 학원버스에 몸을 실은 고교생 김모(18)군은 “이런 식으로 공부하면 지쳐서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버티기가 힘들다”며 “그렇지만 친구들 다 다니는 학원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반문한다.
국민 대부분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개선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교육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은행사거리의 피곤한 밤 풍경은 계속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