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은 과연 무엇일까.’ ‘우주의 힘은 어떤 식으로 작용할까.’소립자 물리학의 핵심인 중성미자(neutrino)는 이러한 의문을 풀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중요한 입자이다.
나의 주요 연구주제 중 하나였던 중성미자는 뉴튼과 아인슈타인을 넘어 현대 물리학의 기저를 이루는 표준모델을 개정하는 데까지 이르는 특이한 입자이다.
지난 글에서도 강조했던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상기할 때, 기초과학의 핵심분야 중 하나인 물리학에서 중성미자의 존재와 기능파악은 물리학의 발달과 함께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중성미자가 어떤 입자인가, 왜 중요한가를 알기 위해서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원리 몇 가지를 확인해 보자.
화학원소로서의 특성을 지닌 기본 입자인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는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모두 쿼크(Quark)로 이뤄져 있다.
쿼크는 소립자 복합 모델의 기본 구성입자로 업(up)ㆍ다운(down), 참(charm)ㆍ스트레인지(strange), 톱(top)ㆍ보텀(bottom) 쿼크의 여섯 종류가 있다.
전자의 경우, 쿼크와 마찬가지로 3개의 쌍, 총 6가지로 이뤄져 있다. 전자, 뮤온, 타온과 쌍을 이루는 중성미자가 하나씩 더 있는 것이다.
그 세 가지는 전자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온 중성미자이며 이들은 전자 등과 함께 형제처럼 따라 다닌다.
이들 크기는 10-17승cm 보다 작은 것으로 추정되며 아직 점인지 아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이 여섯 가지는 모두 가벼운 입자라는 뜻에서 렙톤(lepton)족으로 불린다.
지금까지 밝혀진 이러한 사실들은 1930년 한 과학자의 문제제기로 시작됐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194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는 방사성 물질의 붕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입자인 중성미자의 존재를 가정했다(당시 파울리는 전하가 없다는 이유로 ‘중성자’라고 불렀다).
파울리가 고민했던 문제 중의 하나는 방사성 물질의 붕괴를 설명하는 가운데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는 물리학의 기초 가정이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방사성 물질의 붕괴가 최초로 발견된 후, 물질 붕괴에는 세 종류가 있다는 것이 확립됐다.
알파, 베타, 감마선 중 전자를 방출하는 베타선의 경우, 에너지가 일정한 값을 지니고 나올 것이라는 에너지 보존 법칙의 이론을 깨고 에너지가 연속적인 값을 지니고 나오는 것이 관찰됐다.
바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깨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중성미자의 존재를 가정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파울리가 중성미자의 존재를 처음 주장했을 때 학계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전하도 없고, 무게도 없고, 다른 입자들과 상호작용도 거의 하지 않아 검출하기조차 불가능한 신비의 미립자, 중성미자를 그 당시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932년에 중성자가 발견되어, 이탈리아의 엔리코 페르미가 중성미자로 이름을 바꾸고 이를 이용하여 현재까지도 쓰여지고 있는 베타 붕괴이론을 제시하면서 비로소 학자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결국 1956년 프레드릭 라이네스와 코웬은 10톤이나 되는 초대형 검출기를 이용해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해냈다.
라이네스의 연구 이전은 물론 아직도 중성미자는 ‘겨우 존재하는 신비의 입자’로 불려지고 있다.
‘파울리의 입자’, 중성미자의 존재를 밝혀낸 업적으로 라이네스는 40년이 지난 1995년 노벨상을 받았다.
물론 아직까지도 중성미자가 왜 세 개인가는 아무도 모르는 수수께끼이다. 중성미자의 질량 역시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중성미자가 질량이 있는가’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중성미자가 질량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현대 물리학의 기본 이론인 표준모델을 개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뉴튼의 고전 물리학,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그리고 양자론을 넘어 소립자 세계의 물질과 운동 법칙을 정리한 표준모델은 중성미자의 질량이 없다는 가정을 기초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실험적 입증이 제시된 것이다.
내가 연구했던 중성미자의 진동(oscillation)의 성질은 바로 새로운 물리학인 초대칭이론, 통일장이론 그리고 초끈이론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열었고, 우주를 이루는 물질을 밝혀내는 과정의 출발점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한국고등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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