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경합이 표면화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선거까지는 아직 8개월도 더 남았다.그러나 후보자들간의 경쟁은 이미 극심한 이전투구 양상을 들어내고 있어 이런 식으로 좀 더 나아가다간 대통령 지망자 모두가 피투성이가 되어 국민 앞에 떳떳한 얼굴로 나설 사람이 하나라도 남아 있을까 걱정이 된다.
대통령의 책임이 워낙 막중하니 사생활까지 어느 정도 파고들어 시비를 가리는 것은 불가피한 일 일지도 모른다.
재산이 얼마고 어떤 집에서 살며, 누구와 어떻게 어울리는가 등 사람의 행동거지는 그 하나 하나가 다 그 사람의 인생관과 사회철학의 표현이요 정치적, 도덕적 판단력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도덕성에서 큰 결함이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도덕적 청명성이 곧 지도자적 자질에 대한 척도나 보장은 아니다.
큰 일을 하지 않으면 시비에 말려들 가능성은 그 만큼 적어진다.
사적인 영역의 문제만을 지나치게 깊게 파고 들어 갈 때의 위험은 그보다 더 중요한 공적 영역에서 필요한 지도자로서의 자격에 대한 검증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될 사람은 최소한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가.
첫째 그는 국민의 대다수가 받아드릴 수 있는 역사적, 세계적 안목과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지금 나와 있는 후보들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함께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는 듯 하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어야 할 것은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있으며 항상 팽팽한 긴장관계에 놓여있는 자유와 평등의 절충점을 구체적으로 어디에 두겠다고 생각하는가, 곧 국가적 권능의 한계가 어디에 있고, 부문별로 복지의 하한선은 어디에 그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점 등이다.
철학이 있고 이상이 있다고 그것을 관철시킬 능력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다.
후보들은 어떤 식으로 그들의 이상을 실천할 것인지, 어떻게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안되게 할 것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미 증명된 통치 능력이 얼마나 있으며,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발탁하고 동원 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과 방법을 가지고 있는가도 점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정당들이나 정치인들 자신은 우선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승부의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추어 무원칙하게 이합집산을 계속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주인인 유권자들, 또는 그들을 계몽하고 선도해야 할 책임과 권능을 가지고 있는 언론 매체들 까지도 그것에 따라 춤추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면 그것이야 말로 슬프고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우리대로 던지고 싶은 질문을 계속 던지고 정치적 자질을 검증해야지 누구 누구하고 만나서 무엇을 쑥덕거렸다는 보도에 아까운 지면이나 화면을 할애 할 일이 아니다.
국민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한 판단을 하여 자기가 지지할 후보가 누구인가를 결정하고 그 판단의 준거를 제시한다면 세계화 시대에 아직도 지연, 학연으로 얽힌 인맥 정치의 늪에서 탈피하지를 못하고 있는 우리 정치인들도 새로 숨통이 트임을 환영할 것이고 우리 정치는 비로소 부패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어버릴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지 정치인들이 아니다. 잘못된 정치에 대한 책임과 부담은 항상 국민이 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주인이 주인답게 행세를 하려면 감정보다는 이성, 좁은 가족적, 지역적 안목보다는 국민적, 세계적 견지에서 나라 살림의 문제를 생각하고 큰 살림을 바깥 세계와의 협동 및 대결 속에서 가장 잘 꾸려 나갈 사람이 누구인가를 판별해 내는 예지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인호 한국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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