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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붉은 테러' 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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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붉은 테러' 악령

입력
2002.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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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를 테러 공포로 휩싸이게 한 19일의 이탈리아 노동장관 고문 살해 사건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3일 앞두고 발생한 20일의 페루 주재 미국 대사관 부근 차량 폭탄 테러 사건은 각각 좌익 게릴라 단체인 ‘붉은 여단’과 ‘빛나는 길(센데로 루미노소)’의 소행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은 과거에 악명을 떨치던 좌익 테러단체다. 이탈리아와 페루 정부는 이들이 다시 준동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며 긴장하고 있다.이탈리아의 테러 전문가들은 마르코 비아기 노동장관 고문을 살해했다고 언론사에 성명서를 보낸 ‘붉은 여단’이 1970년대와 80년대에 알도 모로 전 총리 등 유명 정치인과 교수,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납치 살해한 도시게릴라 조직 ‘붉은 여단’과 거의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성명 내용을 보면 마르크스주의 혁명을 통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제국주의 타파를 표방하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정부가 노동자 계급의 힘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하는 등 과거의 붉은 여단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범인들이 현장에 남긴 오각형 별의 로고도 같다.

이탈리아 정부는 수백 명에 달했던 붉은 여단 조직이 대대적 소탕작전으로 거의 와해된 것으로 믿고 있다. 때문에 99년 정부의 노동개혁안을 입안하던 마시모 단토나 정부 고문이 살해됐을 당시 범인들이 붉은 여단이라고 밝혔을 때만 해도 과거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게릴라들의 최후의 몸부림 정도로 보아 넘겼다.

그러나 이번 비아기 고문 살해사건으로 과거의 붉은 여단이 활동을 재개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같은 이름과 로고를 사용하는 새로운 세대의 조직이 출현했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페루의 폭탄 테러도 범행에 사용된 폭발 장치와 사건 정황으로 미뤄 좌익 반군 ‘빛나는 길’이 저질렀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농민 봉기를 통해 공산 정권을 수립하는 마오쩌둥(毛澤東)식 공산주의노선을 추종하는 이 조직은 80, 90년대에 테러, 암살 등을 통해 3만 명의 희생자를 내며 페루 정권 전복을 시도했으나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강력한 토벌작전으로 세력이 크게 위축됐다. 이 조직의 테러 활동은 97년 리마의 차량 폭탄테러가 마지막이었다.

페루 당국은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일본으로 도피한 이후 정권 교체기를 틈타 세력 만화를 꾀해온 이 조직이 재기를 시도하기 위해 이번 테러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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