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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興이 있는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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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興이 있는 지도자

입력
2002.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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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내한한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일본총리의 첫 날 행보는 파격적이었다.공식행사인 동작동 국립현충원 참배 외에는 한국문화 체험으로 일정을 짠 그는 국립국악원에 들러 아리랑 시범연주를 참관하고 가야금도 연주해 보았다.

■ 절인 음식을 싫어한다는 그가 숯불갈비와 김치로 저녁식사를 한 것은 한국인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계산된 행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한국 전통음악이 일본 궁중음악과 매우 비슷한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언급도 오히려 한국에 대한 무지의 소치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사랑만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우리 가수들의 가요CD를 여러 장 구입한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열성팬이다.

지난 해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내놓은 나의 애창 엘비스의 노래’라는 CD의 해설문을 대부분 직접 썼을 정도다.

■ 중국의 장쩌민(江澤民)도 음악을 좋아해 못 다루는 악기가 없다는 사람이다. 그는 6년 전 마닐라에 갔을 때 흥에 겨워 요트에서 차차차 춤을 추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열창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중ㆍ고교에 다닐 때 문학소년이었던 江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인용하곤 한다.

3년 전 우리나라에 처음 왔던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의 문화사랑도 우리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여왕이 인사동과 안동 하회마을을 다녀간 뒤부터 이 두 곳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 그런데 전 정권시절에 청와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제대로 된 그림 하나가 붙어 있지 않은 것에 놀랐다고 말했었다.

신년음악회에서는 대통령이 지루해 하신다고 교향곡을 잘라 연주토록 해 음악인들의 비웃음을 산 일도 있다. 그런데도 역대 대통령들은 문화대통령이고 싶어 했고 그런 대통령이었다고 자처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도 문화사랑이 대단하다고 말들은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기는 참 어렵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흥이 있는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는데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임철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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