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라는 직업은 환자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의 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사랑이 없이 질병만을 다스리려는 우를 범하기 쉽다.에릭 시걸은 ‘닥터스’라는 소설에서 1950년대 미국 하버드의대생들을 등장시키면서 의대생들의 고된 학업과정과 인턴, 레지던트 시절의 피말리는 수련,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의사로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러브스토리’를 쓴 특유의 섬세하고 서정적인 필치로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시걸은 이 소설을 통해 환자들이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바쳐 의사를 신처럼 숭배하고 있지만 의사는 모든 병을 흡족하게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가장 상처받기 쉽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환자들에게는 전지전능하게 보이는 의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때로는 실수도 있을 수 있고 비정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내게 많은 공감을 주었다.
나는 1980년대 말 이 책을 읽었다.
그 당시 수련의 생활을 거쳐 국립의료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개원의의 안정된 길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중한 환자들을 보살피고 후학을 가르치며 보람을 찾을 것이냐는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이 책은 내게 분명한 답을 주었다.
고생이 되더라도 중한 환자를 돌보고 레지던트 후배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바로 그 길이었다. 그 뒤 나는 이 책을 동료나 선후배 의사에게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이 책은 의사와 환자의 거리를 좁히는데도 도움을 준다. 실제로 의약분업의 과정에서 환자와 의사간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고 있는데 이 책은 베일에 숨어 자신의 영역 노출을 꺼리는 의사의 모습을 인간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그런 점에서 80년대 초 내가 직접 번역, 출간한 어느 풋나기 수련의사의 일기 ‘인턴 엑스’ 와도 일맥상통한다.
나는 외과의사로서 지금도 일주일에 10여건의 수술을 한다. 무척 힘들고 심지어 짜증이 나기까지 한다. 그럴 때마다 내게 심기일전의 힘을 준 책이 ‘닥터스’다.
현실에 안주하고 매너리즘에 빠지려는 내게 신선한 충격과 더불어 히포크라테스선서를 되뇌이게끔하는 이 책을 나는 독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 양정현 삼성서울병원 진료부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