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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崔鉉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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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崔鉉培

입력
2002.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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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3월23일 국어학자 최현배가 작고했다. 향년 76세. 최현배의 호는 외솔이다. 울산 출신으로 경성고보(지금의 경기고등학교) 재학 중 한힌샘 주시경의 조선어강습원에서 국어문법을 배운 뒤 평생의 일감을 국어 연구로 정했다." 히로시마(廣島)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토(京都)제국대학 철학과에서 교육학을 전공했지만, 귀국 뒤 그의 연구와 저술은 국어학에 집중되었다. 외솔은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에서 오래 가르쳤는데, 그의 가르침은 지금까지 연세대 국어학의 학풍을 큰 틀에서 규정하고 있다.그 학풍을 거칠게 요약하면 강한 언어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외솔에게 그 언어민족주의는 한자어를 비롯한 외래어의 추방과 한글 전용으로 집약되었다.

그는 자신의 방대한 저서 안에서 국어학 술어들을 한자어가 아니라 고유어로 썼고, 죽을 때까지 한글 전용 운동을 일선에서 이끌었다. 그의 저서 안에서 음성학은 ‘소리갈’이 되었고, 품사론은 ‘씨갈’이 되었고, 문장론은 ‘월갈’이 되었다.

그가 만들어낸 고유어 술어들은 더러는 살아 남았고, 대개는 폐어가 되었다. 그의 언어민족주의를 편협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의 침탈 아래서 구국의 수단으로 언어 연구를 수행했던 학자에게 그 민족주의는 자연스럽고 고귀한 마음 상태이기도 했을 것이다.

외솔을 언어민족주의의 지평 위에서만 거론하는 것은 그의 학문의 껍데기만을 만지는 것일 터이다. 그의 대표작 ‘우리 말본’(1937)은 이론적으로도 국어학만이 아니라 세계 언어학사의 획기적 저서로 꼽을 만하다.

동시대 유럽 구조주의 언어학의 형태음소론적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20세기 후반에 촘스키와 할레가 개척할 생성음운론의 아이디어가 이미 거기 개진돼 있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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