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22일 정상회담은 ‘가깝고도 먼’ 한일 관계를 ‘가깝고도 가까운’ 관계로 전환시키려는 포석(布石)으로 평할 수 있다.양국 정상의 월드컵 개ㆍ폐막식 교차 참석,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논의할 산ㆍ관ㆍ학 공동연구회 출범 등의 합의는 사안 별 의미에 더해 장기적으로 양국간 협력구도의 구축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다.
과거 역사를 외면할 수는 없지만, 그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양국관계가 발목을 잡히는 것은 경제,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얽혀있는 인접국으로서는 현명하지 못하다는 판단을 양국이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고이즈미 총리가 국립국악원 방문, 서울 시내 산책 등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김 대통령에 시종 겸손한 자세를 취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연간 구제역 파동으로 중단된 3억 달러 상당의 한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4월부터 재개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성의를 내비친 것으로 평가된다.
마찬가지로 김 대통령도 ‘역사문제와 병행한다’는 식의 전제를 달았지만 “일본문화개방에 대해 필요한 과감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양국 협력구도 구축의 계기로 두 정상은 월드컵 축구대회를 중시하고 있다. 월드컵 대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양국 관계의 지평은 크게 넓어질 것이라는데 같은 인식을 하고 있다.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입국사증의 면제, 항공편의 증편 운항도 양국간 교류의 비약적 확대를 염두에 둔 합의이다.
FTA 문제가 정상회담의 주된 의제였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 동안 FTA 논의는 ‘협정을 체결하면 일본에 먹힌다’는 우리의 피해의식 때문에 진전되지 않은 측면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자동차 반도체 등의 경쟁력이 나름대로 확보된 상황에서 FTA 체결은 동북아 경제권의 힘을 강화해주고 연간 500억 달러의 농산물을 수입하는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이득을 가져올 수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총괄적으로 “역사교과서 문제로 악화한 한일 관계가 작년 10월 정상회담을 통해 조정국면에 들어갔고 오늘 정상회담에서 복원됐다”고 회담의 의미를 압축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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