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테러 연대를 넘어 빈곤과의 전쟁으로’.전세계의 빈곤 퇴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유엔 개발재원회의 정상회담이 21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멕시코 북부 공업도시 몬테레이에서 개막됐다.
유엔 창설 이래 처음으로 세계 각국 정상들이 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이번 회담에서 선진국 및 저개발국 50여 정상들은 부국과 빈국의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촉구하는 ‘몬테레이 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다.
이들은 9ㆍ11 테러 이후 국제 테러의 근본 원인이 종교나 문명의 대립이 아닌 선후진국 간의 개발 불균형에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지만 전지구적인 ‘세계화’의 바람 속에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국가간 빈부 격차에 대해 각자의 입장과 주장을 놓고 첨예하게 맞섰다.
■ 세계화 성토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국제경제 시스템을 ‘거대한 카지노’에 비유하며 빈부국 간의 생활수준 격차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대량학살’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이런 참상은 빈국들의 탓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친 약탈과 식민화, 현대 제국주의의 결과”라고 선진 강국을 공격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부국들이 빈국들의 안정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됐다”며 “너무나 많은 다수가 헐벗고 고통받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낄 수는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은 21일 개막 연설에서 “수십년 동안 각국은 국제협조를 통해 개발과 빈곤 문제에 맞서왔지만 그 결과는 빈약하고 실망스럽다”며 빈국들에 대한 개발지원의 본질적 성격을 되새겨줄 것을 각국 정상들에게 촉구했다.
■조건부 지원
이번 회의에 앞서 지난 주 각각 50억과 70억 달러 규모의 빈국지원 계획을 발표한 미국과 유럽은 선진국으로서의 입장을 견지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부패한 국가에 투자하지 않겠다”며 “원조를 받고자 하는 국가는 경제ㆍ정치 제도를 먼저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 유럽연합(EU) 역시 개발 당사국 우선책임론과 건전한 정책 운영 등을 전제로 내걸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 대표들도 “강력한 경제 집중과 무역장벽 철폐가 빈곤 극복에 필수적”이라며 세계화를 옹호했다.
■문제는 돈
유엔측은 빈곤과의 전쟁을 위해서는 연간 1,000억 달러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현재 지원 규모는 절반 수준인 500억 달러에 머물고 있다.
지난 2000년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선진 부국은 공적개발원조(ODA)를 국민총생산(GNP)의 0.7%까지 끌어올리기로 했으나 현재 EU의 경우 0.33%, 미국은 0.1%에 머물고 있다.
코피 아난 총장은 “획기적인 재정 지원 없는 이번 몬테레이 선언은 붕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등 5개국 총리도 이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게재한 공동 호소문에서 “합의안의 취지는 훌륭하지만 현재의 ODA로는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몬테레이 합의란
정상회담 폐막에 맞춰 발표될 몬테레이 합의안은 부국이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 및 민간 투자를 확대하고 무역장벽을 완화하도록 하는 한편 개발도상국은 시장을 개방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0년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담에서 '하루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전세계 극빈층의 수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자'는 합의에 이은 구체적인 실행안 격이다.
하지만 개도국과 저개발국들은 선진국이 합의안에서 분야별 지원 규모나 시행 일정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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