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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버추얼텍 대표 서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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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버추얼텍 대표 서지현

입력
2002.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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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김병후(47)박사가 매주 금요일 정치·경제·문화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 리더들을 만납니다.'딸사랑 아버지 모임'대표이자 방송 출연과 기고 등을 통해 여성에 대한 열린 시각을 보여왔던 그는 특유의 예리한 시각으로 21세기 '여성성'의 실체를 분석해 볼 계획입니다≫회사는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없게 돼 있었다. 인터폰으로 연락하자 문이 열렸다. 몇 백 평은 됨직한 공간….

곧 자유로운 출입이 어렵도록 만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00여명의 직원이 하나같이 무언가에 몰두해 있었다. 조용히 복도 끝 사장실로 갔다.

여느 사장실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애완견(마르티스), 벽에 걸린 마른 장미다발, 스누피가 그려진 원색 깡통그릇….

맑고 천진난만하면서 동시에 자신만만해 보이는 버추얼텍 대표 서지현(徐知賢ㆍ37)씨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족 관계부터 물었다.

1남 5녀중 둘째 딸, 1987년 연세대 전산학과(1회) 졸업, “선배가 없어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익숙하며, 하고 싶은 것만 하니까 학교 성적은 별로 였다”고 했다.

23세에 창업, 10여년 만에 국내에서 가장 돈많은 여성 벤처 기업인(2001년 주식 보유액 기준 여성 벤처갑부 1위)은 돈 많다고 뻐기는 타입은 결코 아니었다.

공격적이거나 경쟁적일 것이란 생각했으나, 그런 느낌도 전혀 없었다.

지난해 주가가 떨어져 주주들로부터 주가를 끌어 올려 달라는 주문은 없었느냐고 묻자, ‘기술력도 좋고 마케팅전략도 좋고 미래가치도 좋은데 그럴 필요성이 있었겠느냐”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연이어 ‘벤처인들의 부정적 측면’을 말해달라고 하자, “그런 대답은 할 수 없다”며 대신 “주변에서 본 적은 없지만 벤처란 편법을 써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으며, 악법도 지켜야 한다”는 우회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법은 지키지만 법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부드럽지만, 주저함이 없는 답변 속에는 자기자신과 세상사에 대한 뚜렷한 생각과, 강한 책임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말끝마다 ‘챙피해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부끄러움을 갖고 있기에 어느 선 이상의 잘못은 범하지 못한다는 것일까.

정도를 지키는 태도는 폭넓은 대인관계로 이어지고 있었다. 여러 해동안 함께 일해온 동료가 많고, 아직까지는 인간관계를 맺어온 부하직원에게 배신 당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은 독신이면서, 지금까지 무려 200쌍을 성사시킬 정도로,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는 관심이 많았다.

“회사 운영의 절반이 사람과의 관계에 달려 있죠. 벤처는 다 그래요”그녀 말대로 회사는 따뜻함이 곳곳에 배어나는 가족적 분위기였다.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와 인간 중심의 회사 운영이야말로 여성 CEO의 장점이 아닐까.

자신은 아직까지 한번도 ‘위기’를 겪은 적이 없다고 인식하는 점은 특이했다.

비즈니스차 미국방문 도중 일이 제대로 해결 안돼 절망하며 호텔 방에서 쓰러졌던 일이나, 주가하락으로 투자자들의 항의가 잇달았던 일, 부유하게 살다 고3 때 아버지 사업의 부도를 맞았던 일, 그리고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가 행상에 나섰던 일, 심지어 홍수로 집이 잠긴 경험들이 있는 데도 말이다.

이 모든 일을 열거해 나가자 “그래도 ‘위기는 없다’”고 표현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 이유는 위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끼지 않아서 일 것이다.

위기를 부인하는 이유는 그녀의 과거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부도 후 전직 교사였던 어머니는 행상을 시작하고, 그녀는 그런 어머니를 따라 다니곤 했다. 자신의 친구 집에 물건을 팔러 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평소 창피는 잘 느끼지만 어머니의 행상은 부끄럽지 않았다는 점에 중요한 교훈이 있다. 부모가 위기상황에서 당당하면, 자녀도 위기를 당연히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화를 하며, 그녀의 위기극복 능력은 여고시절 형성된 어머니와 딸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것임을 추측케 했다.

결국 위기를 극복하고, 집안을 다시 일으킨 어머니의 성공 스토리는 딸에게 ‘위기란 반드시 극복된다’는 무의식적 확신을 가져다준 것이다.

힘든 일이 생겨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할 때, 그녀는 ‘어떻게 되겠지’라고 말한다고 했다.

‘어떻게 되겠지’는 물론 긍정적인 기대 속에 나오는 말이다.

어머니의 당당함은 모녀의 정서적 교감과 유대감 속에 접목돼 버츄얼텍의 서지현씨에게 ‘위기는 오히려 도약의 계기’라는 도전감을 마음 속 깊숙이 심어준 듯 싶다.

“남에게 피해를 안주고 열심히 살면서, 직원들이 돈 잘 벌어 잘 먹고 잘 사게 하는 것”이 자신의 경영철학이라고 소개하는 그녀는 가난한 노인들을 위한 ‘사이버 실버타운’의 건설이 자신의 꿈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무의식적이지만, 직원들은 그녀의 형제, 노인은 부모로 상징화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가난한 노인은 부모님의 약한 면이다. 강한 부모님의 약한 면까지도 자신이 거둔다는 무의식적 발로다.

그녀의 삶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가족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에게 회사와 사회는 무한한 사랑을 쏟고 싶은 확대된 가정이었다.

바로 이 점이 그가 여성 사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아니었을까.

법을 지키면서 사업을 해야 하고, 위기를 당연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확대 가족인 직원과 노인을 위한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녀는 유연하면서도, 강인했고, 그리고 패기가 넘쳤다.

약력

●약력

▲1987년 연세대 전산과학과 졸업

▲1991년 아이오시스템 설립

▲1999년 버추얼텍으로 상호변경. 12월 신지식인 선정

▲2000년 코스닥 등록

▲2001년 아시아위크 선정 아시아경제 뉴리더 25인 선정

▲현재 ㈜버추얼텍 대표이사, 여성벤처협회 부회장

■벤처 여성CEO 3%대 차지

유ㆍ무선 솔루션 전문업체 ‘버추얼텍’의 서지현 대표는 삼경정보통신 김혜정 대표, 대성메디테크 이봉순 대표와 여성 벤처2세대의 대표주자.

2000년 여성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버추얼텍을 코스닥시장에 등록시켰다. 1세대는 정희자 오토피스엔지니어링 대표와 이영남 이지디지털 대표 등을 꼽을 수 있다.

벤처기업에서 여성CEO의 비율은 계속 증가 중이다.

1998년 벤처기업 2,040개 가운데 57개(2.8%), 99년 4,930개중 148개(3.0%), 2000년 8,800개중 299개(3.4%), 2001년 상반기에는 10,700개 중에서 392개(3.7%)를 기록했다.

서지현 대표가 부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여성벤처기업협회(회장 이영남 이지디지털 대표)의 회원사 수도 1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났다.

아직 코스닥 상장기업 중 여성이 CEO인 기업은 10여개에 불과하다. 여성벤처협회만 해도 종업원이 100명이 넘는 회사는 이지디지털과 버추얼텍 등 3~4개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벤처협회 한은숙 상임국장은 “무리한 사업확장을 꾀하지 않아 기업은 상대적으로 견실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말 많은 벤처 비리에 여성 기업인은 연루되지 않았다. 대출을 받아 덩치를 불리기보다는 연구개발 투자에 힘써, 상대적으로 회계가 투명하고 기업경영이 깨끗하다.

술자리 위주의 접대문화에 취약한 여성 벤처기업인은 상대적으로 다른 벤처기업이나 대기업과의 네트워크가 긴밀하지 못한 편이다.

현민시스템 이화순 대표는 여성경제 포털 사이트 ‘W21’, 성주인터내셔널 김성주 대표는 ‘아이윌비닷컴’ 같은 휴먼네트워크를 통해 여성 기업인들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양은경기자

key@dailysports.co.kr

●김병후씨는 누구

각종 방송 출연을 통해 부부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조언으로 널리알려진 정신과전문의 김병후.그는 1998~99년 여성단체연합에서 꼽은 '만나고 싶은 남자'에 2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또 10년째 KBS아침마당에 고정패널로 활약하는 등 여성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왔다.그는 "우리사회가 발전하려면 여성성이 더욱 계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여성성이야말로 사회를 편안하고 안전하며 사랑이 깃든 곳으로 만든다는 생각에서다.

첫 인터뷰를 끝낸 후 그는 "뿌듯하다"고 했다.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여성의 발랄한 에너지가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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