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 두고 나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살림 다이어트다.살림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냐고? 물론이다.
이사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몇 년 묵은 살림을 정리하다보면 정말 쓰잘 데 없는 물건들을 우리가 얼마나 끼고 살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결혼 후 20여년간 유학이다, 귀국이다, 또다시 외국근무다, 연수다 해서 총18번인가 이사짐을 싸야했다는 친구가 있다.
그녀가 항상 자랑하는 것이 자기네 살림에는 꼭 필요한 물건만 있다는 것이다.
이삿짐 한번 쌀 때마다 살림살이의 거품을 벗겨내다 보니 군살하나 없는 마라토너의 아름다운 몸처럼 근육질의 물건만 간직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한번은 이사한 지 이틀 뒤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온가족이 얼마나 짐싸고 푸는데 이력이 났는지 박스 더미 사이에 앉아있으려니 했다가 적지않은 살림살이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것을 보고 정말 놀랐었다.
이렇게 단련된 그녀의 살림 다이어트 솜씨는 냉장고를 열어보아도 마찬가지다. "한 여름에도 수박 반덩이는 넣을 공간을 비워놓자는 게 내 원칙이야."
하루는 창고를, 하루는 다용도실을, 하루는 공부방을… 하는 식으로 부위별 살빼기를 하는 중인데 깨끗해진 공간을 바라보면 정말 이영자가 체중계에 올라가던 기쁨을 알 것 같다.
하긴 캐런 킹스턴이라는 미국의 '공간정리 컨설턴트'에 따르자면 우리 주변의 잡동사니들은 단순히 기분만 찝찝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균형있는 에너지 흐름을 막아 결국엔 우리 인생까지 꼬이게 한단다.
반대 경우엔 육체와 영혼마저 청소되어 좋은 일이 생기고….
살림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생긴 좋은 버릇 하나. 물건을 사기 전 이것이 정말 나에게 꼭 필요한지 두 세번 생각하게 된다는 것.
'네 지갑은 내 것'이라고 온갖 광고가 소리치는 이 시대에 얼마나 근사한 자기 방어술인가!
/이덕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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