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만해도 우리나라에서 이혼 하는 부부가 자식을 서로 맡지 않겠다는 풍경은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 서울 서초동 가정법원에서 목격하는 모습은 정반대다.가족 해체가 가속화하고 있는 요즘 가정의 의미와 부모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바로 ‘로얄 테넌바움’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로얄 테넌바움’은 부모의 별거가 자녀들의 성장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 지를 추적해 나간다.
부모의 별거가 천재성 있는 자녀들을 일반인도 대처할 수 있는 문제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시킬 수 밖에 없는 지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연극형식을 취하고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해 10막으로 구성돼 있다.
영화에선 생소한 구성이지만 각 막마다 특정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감독이 말하고자 내용과 메시지를 확연하게 전달해준다. 등장인물 자체가 플롯을 대신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로얄 테넌바움(진 해크먼)이라는 파산한 변호사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가족은 내 팽개친 채 자신만을 생각하며 22년 전 아내와 별거한 테넌바움이 숙박비를 내지 못해 호텔에서 쫓겨난다.
테넨바움 부인은 지성과 감성을 지닌 고고학자 애슬린(앤젤리카 휴스턴)이며 남편을 대신해 입양한 첫딸을 포함해 자녀 셋을 키운다.
입양한 첫째 마고(기네스 펠트로)는 문학적 소양이 뛰어나 열 다섯 살 때 이미 희곡으로 퓰리처상 거머쥐었다.
둘째 채스(벤 스틸러)는 어려서 부터 부동산과 금융분야에 천재성을 발휘했다.
셋째인 리치(루크 윌슨)는 10대때부터 주니어 테니스 세계 순위에 오른 테니스의 영재다.
부모의 별거로 자녀들은 자신이 가진 천재성을 상실한 채 성장을 멈추고 과거에 매몰 돼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황폐해 간다.
문학에 환멸을 느끼며 세상과 담을 쌓고 목욕탕에서 하루종일 텔레비전만을 보고 비행기 사고로 아내를 잃은 채스는 안전 강박증 환자로 전락한다.
리치는 누나 마고를 사랑하며 괴로워 하다 자살을 기도한다. 모두 박제돼버린 천재들로 전락한 것이다.
자식들이 아버지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파멸해가는 원인이 부모의 별거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가족의 화해가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가 끝까지 놓치지 않은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이라는 것이다. 진부한 주제일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등장 인물들을 통해 가족의 문제를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느끼게 하는데 있다.
영화 곳곳에 유머를 비롯한 희극적 장치와 아이러니를 배치한 것도 진부함을 신선함으로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는 기존 이미지와 전혀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하는 배우들이다.
카리스마 강한 배역을 맡았던 진 해크먼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다층적인 성격을 가진 테넌바움 역을 연기해 올해 골든 글로브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으며 기네스 펠트로 역시 우울한 천재의 모습을 잘 표현해냈다. 29일 개봉.
배국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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