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춘변산 추내장’이라 했다. 가을 경치는 내장산이 으뜸이요, 봄경치는 변산(전북 부안군)이 최고라는 뜻이다. 바다와 산, 그리고 호수까지 가세한 변산반도는 가히 볼거리의 집합소이다. 변산은 크게 내변산과 외변산으로 나뉜다.산을 중심으로 한 내변산과 해안을 빙 도는 외변산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한번의 여행으로 산과 바다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변산.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몽우리는 터질 듯 물이 올라있다.
▼내변산
변산의 제1경 직소폭포가 단연 으뜸이다. 직소폭포는 산 속을 흐르는 물줄기가 이루어내는 장관. 높이 22.5㎙의 거대한 돌덩어리 위에서 거의 수직으로 내리 꽂힌다. 긴 가뭄으로 물줄기가 희미할 것이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가뭄을 비웃듯 변함없이 웅장하다. 숲이 살아있는 건강한 산은 웬만한 가뭄에도 끄떡없다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든다.
폭포는 계속 2폭포 3폭포로 이어지며 아름다운 소(沼)를 이루어놓았다. 분옥담, 선녀탕이라는 고운 이름이 붙어있다. 깊은 물은 연초록색 봄빛을 머금고 있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 위해서는 값을 치뤄야 하는 법. 깊은 산 속에 있기 때문에 최소한 1~2시간 정도 산길을 걸어야 한다. 길이 험하다. 뾰족구두에 치마를 입고 나섰다가는 낭패를 본다.
633년(백제 무왕 34년)에 창건된 고찰 내소사는 반드시 들려봐야 할 곳. 원래 이름은 소래사였다. 언제 이름의 앞뒤가 바뀌었는지 확실치 않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들렀다가 시주를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근거가 없다.
단청을 들이지 않은 원목 그대로의 절 건물이 담백한 운치를 풍긴다. 특히 대웅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보물 제291호인 대웅전은 쇠못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만으로 끼워 맞춘 건물이다. 초화문을 투각한 문살이 아름답다. 일주문에서 법당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은 너무나 유명한 길. 하늘을 찌르는 전나무 사이사이로 앙증맞은 산죽(山竹)이 푸르다. 진한 나무냄새를 마시며 걷는다.
개암사는 내소사가 창건된 이듬해에 만들어진 절. 단정한 모습이 내소사를 닮았다. 특히 대웅전은 내소사와 거의 흡사하게 생겼다. 보물 제291호이다. 절 뒤로 우뚝 솟아있는 울금바위가 인상적이다.
내변산을 두루 돌아보는 방법은 역시 산행이다. 돌산이어서 길이 가파르다. 그러나 힘을 들인 만큼의 보람을 얻는다. 규칙적으로 금을 그어놓은 듯한 특이한 모습의 바위 봉우리, 바다와 호남의 연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 위에서의 조망 등 ‘변산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는 감탄이 저절로 터진다.
▼외변산
책을 켜켜이 쌓아 놓은 듯한 검은 바위 채석강에 먼저 들른다. 물이 흐르는 강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격포해수욕장 한쪽에 버티고 있는 기괴한 모양의 바위이다.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 기슭과 비슷하다고 해서 독특한 이름이 붙여졌다.
솟아올랐다가 풍우와 파도에 깎인 바위가 아니다. 수억년에 걸쳐 퇴적된 수성암이다. 썰물이 되면 바위 위를 걸어 채석강의 절벽을 빙 둘러볼 수 있다. 1988년 변산반도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수석업자가 이 절경을 조각내 조경용 석재로 팔아먹기도 했고 격포항 방파제를 쌓는 데에도 많은 양이 들어갔다고 한다.
한숨이 나올 일이다. 바위 위에서 아주머니들이 좌판을 펴놓고 소라, 멍게, 개불회를 판다. 모듬회 한 접시에 1만 원. 소주를 곁들인다. 바닷바람과 풍광에 이미 취해있어 웬만큼 마셔도 취기가 오르지 않는다.
채석강 옆으로 펼쳐진 격포해수욕장은 대천, 만리포와 더불어 서해안 3대 해수욕장으로 불린다. 갯벌 대신 고운 모래가 깔려있고 서해바다 치고는 수심이 깊다.
해수욕장을 지나 천연기념물 제 123호인 후박나무 군락지를 거쳐 용두산을 돌아가면 2㎞의 해변에 펼쳐진 또 하나의 절경 적벽강(赤壁江)과 만난다. 이 곳 역시 중국의 시인 소동파가 즐겨 찾던 적벽강에서 이름을 빌렸다.
격포항은 이제 식당가로 변해 포구의 정취를 느끼기 어렵다. 격포 바로 남쪽에 붙어있는 궁항을 찾으면 호젓함에서 오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물이 빠지면 시멘트 포장 길로 항구 바로 앞의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개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포장길옆 갯벌과 바위에는 굴 바지락 등이 지천이다.
외변산의 아름다움은 석양이 완성한다. 붉은 해가 수평선에 점점이 박힌 섬들 사이로 떨어진다. 해만 붉은 것이 아니다. 하늘도 파도도 모두 붉어진다. 갈매기 떼가 날고 통통배 서너 대가 붉은 바다를 지난다면 금상첨화이다. 밀물일 때 물가에 서서 석양을 본다면 너무 넋을 잃지 말 것. 파도가 어느 새 신발을 적신다.
글ㆍ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부안IC에서 빠지면 바로 부안읍. 30번 국도를 타면 된다. 30번 국도는 변산반도 해안을 돌아 고창을 잇는 도로로 변산의 대부분 명소가 이 길가에 있다.
경관이 빼어나 드라이브에도 제격이다.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오전 6시 50분부터 오후 7시 50분까지 35분 간격으로 고속버스가 출발한다. 부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변산까지 시내버스가 수시로 출발한다. 부안관광안내소 (063)580-4434
▼쉴 곳
무궁화가 많이 그려진 호텔이나 콘도는 없지만 장급여관은 즐비하다. 온천욕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변산온천리조텔(063-582-5390~2·40실)은 2인용 객실을 3만 5,000원 받는다. 격포해수욕장과 항구 인근에 모텔과 민박이 많다. 모텔은 평일 4만 원,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6만원이다. 민박은 주말이나 성수기에만 하는데 1만5,000원에서 4만원까지 다양하다.
▼먹을 것
격포항에 횟집이 많다. 전라도답게 어느 식당이나 상차림이 푸짐하고 맛있다. 요즘 양식 광어와 우럭은 ㎏당 6만 원, 자연산은 8만 원 선이다. 회도 싱싱할 뿐더러 특히 매운탕이 일미이다. 이어도횟집(063-582-4444), 전주바다횟집(582-8830), 봉래장횟집(582-7905) 등이 유명하다.
회를 싸게 먹으려면 부안수협격포어촌계 수산물공동직판장을 찾는다. A, B 2개 동에 각 20여 군데의 좌판이 있다. 아침으로는 대합탕이 적당하다. 대합을 끓인 국물에 매운 고추와 파를 얹어 내오는데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대부분의 횟집이 대합탕을 끓인다.
■변산 산행법
내소사와 변산면 인근의 남여치를 잇는 종주 산행이 가장 인기가 높다. 봄철 산불방지 기간(5월 20일까지)에는 이 코스만 개방된다. 내소사와 남여치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마찬가지이지만 내소사 출발은 1,300원의 국립공원 입장료 외에 1,300원의 문화재관람료를 더 내야 하고, 차를 갖고 갔을 경우에는 4,000원의 주차료도 내야 한다. 남여치 출발은 비용은 덜 들지만 주차장이 없어 길 가에 차를 세워놓아야 하는 불안함이 있다.
내소사-관음봉삼거리-직소폭포-월명암-남여치를 잇는 총 7.3㎞, 4시간의 산행이다. 반나절에 주파할 수 있는 비교적 짧은 코스. 그러나 5~6시간으로 여유있게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좋다. 발길을 잡는 아름다운 풍광과 탁족을 유혹하는 쉼터가 많기 때문이다. 맑은 물이 곳곳에 있어 물을 많이 준비할 필요는 없지만 간식은 필수. 산이 험해 체력소모가 많다.
변산은 국그릇처럼 생긴 산. 그릇 안에 직소폭포가 있는 격이다. 그릇 안에 들어갈 때 산을 한 번 넘고 나올 때 다시 넘어야 한다. 두 번 등산을 하는 셈이다. 단순히 산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일반적인 산행을 생각했다가는 체력안배에 문제가 생기고 두 번째 산에 오를 때 기가 질린다.
문의 변산반도 국립공원 관리공단 (063)582-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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