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도 모자랐고 연습할 구장도 없었지만 처음으로 푸른 잔디가 깔린 정식 그라운드를 밟았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성균관대 크리켓팀의 중심타자 이건호(24ㆍ스포츠과학부4)씨는 아직도 첫 국제경기에 출전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뿌려대는 상대팀 투수(보울러)들, 야구처럼 장타를 노리다가 스리랑카 출신의 주장에게 혼쭐이 난 일, 몇번 날아오지도 않는 타구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3시간이 넘게 서있었던 수비자리….
지난 달 25일부터 1일까지 호주 퍼스에서 열린 8인제 동아시아 크리켓 페스티벌에 최초의 한국대표팀으로 참가했던 이씨는 “크리켓은 엄청난 기초체력을 필요로 하는 인내의 스포츠”라고 정의한다.
호주팀, 일본팀, 인도네시아팀과 7번 싸워 7번 모두 완패했지만 이씨는 이번의 경험으로 졸업 후에는 학교팀이 아닌 동호인팀들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이씨가 크리켓을 시작한 것은 지난 해 10월. 교양체육시간에 크리켓 강의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두 명의 타자가 동시에 ‘빨래 방망이’ 를 휘두르며 막대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경기 방식이 어려워 수업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이씨는 과 선후배를 중심으로 팀 결성이 결정된 지난 해 가을에야 비로소 크리켓을 시작했다.
장비라고는 국제크리켓위원회(ICC)에서 지원해준 공 2개, 얼굴보호대가 달린 헬멧과 팔다리 보호대 2세트, 포수(위켓 키퍼)용 글러브 2개가 전부였다. 연습 도중에 글러브가 찢어졌지만 기워주는 세탁소가 없어 테이프로 붙여가며 연습을 해야했다.
크리켓이 공수 양쪽에 걸쳐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은 배트의 모양 때문이다. 초기의 야구배트처럼 넓이 13~15㎝이상의 평평한 형태이다.
그래서 공격측에 절대 유리하다. 최고 수준의 크리켓 투수들은 시속 150㎞ 이상의 공을 던지지만 타자(배츠맨) 뒤에 있는 나무 막대기(위켓)를 단 한번에 맞춰 쓰러뜨리는 위켓 아웃(야구의 삼진과 비슷)이 한 경기에 2~3번이 채 나오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공을 멀리 날리는 것도 공격 수단이지만, 야구 타자들의 커트처럼 공을 여러 번 걷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씨의 말대로 “ 끈기가 없으면 버텨낼 수 없는 것”이 크리켓이다.
아직은 낯설지만 크리켓 배트를 들고 영국신사들의 여유를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이왕구기자
fab4@hk.co.kr
■크리켓이란
크리켓은 8인제 경기를 기준으로 7아웃 당할 때까지(11인제는 10아웃) 혹은 상대가 총 120개의 공을 던질 때(1이닝)까지 더 많은 점수를 내는 편이 승리하는 경기다.
20m거리의 두 위켓을 양 타자(겸 주자)가 한 번 왔다갔다하면 1점이고 타구의 거리에 따라 2~6점까지 낼 수 있다.
파울 라인이 없어 200~300점의 대량 득점이 나는 경우도 있다. 1이닝의 소요시간은 평균 3~4시간으로 긴 수비 시간때문에 1이닝후면 오전시간이 지나가고 티 타임을 가지기도 할 정도다.
한번 수비를 시작하면 3~4시간을 버텨야하고 한쪽 방향의 타구만 수비하는 야구와 달리 7명 또는 10명의 수비수(필더)가 지름 90~150㎙의 타원형 구장에서 360도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타구를 모두 막아야하기 때문에 참을성과 지구력이 저절로 길러진다.
■한국 크리켓 협회서… 일반인 상대 교육·경기
지난 해부터 성균관대에서 교양수업으로 크리켓을 채택해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크리켓을 즐길 수는 없었다.
일반인들이 크리켓을 배우거나 경기에 참여하려면 한국크리켓협회(www.koreacricket.com)를 통하면 된다.
크리켓협회는 주한 영국인, 스리랑카인, 호주인, 인도인, 파키스탄인들을 중심으로 1991년부터 봄리그(3~5월)와 가을리그(9~11월)를 펼치고 있는데 관심이 있는 한국인들에게 크리켓을 교육시켜주고, 함께 경기에 참가시키기도 한다.
특히 올해초 최초로 성균관대팀이 한국대표로 국제대회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돼 국제크리켓위원회(ICC)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지원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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