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감사원이 발표한 중앙선관위 일반감사 결과 보고서에는 숫자가 없다.감사의 핵심인 정당의 국고보조금 사용 내역에 대한 구체적 회계감사 내용 대신 “중앙선관위가 지도ㆍ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극히 추상적인 지적만 담았다.
감사원 당국자도 겸연쩍은 듯 “감사 결과에 액수가 빠진 것은 처음”이라며 “정치철 아닙니까”라고 둘러댔다. 감사원 스스로 선관위 감사의 실패를 시인한 셈이다.
감사원은 선관위에 대해서는 서면 감사만 해 오다가 지난해 11월말 정당보조금과 관련, 처음으로 현장감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힘 있는’ 기관의 장막에 부닥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관위가 “행정부에서 정당의 국고보조금 사용을 감사하는 경우는 없다”고 발끈한 데 이어 한나라당 등도 감사원법 개정을 제기하며 맞불을 놓았기 때문이다.
5일간의 짧은 실사(實査)에도 불구하고 부실의 윤곽은 어렴풋이 드러났다. ‘정당 활동’의 그럴 듯한 명목으로 제출된 영수증의 상당수는 가짜로 추정됐다.
바로 여기서 감사원은 손을 들었다.
공연히 정당과 불협화음을 빚을 필요가 없는 데다 공금 횡령을 적발해도 관련자가 정당 활동에 썼다고 우기면 끝까지 가려 내기 어렵게 돼 있는 정치자금법이 감사의 실효성을 떨어뜨렸다.
감사원은 알맹이가 빠진 감사 보고서에 음주운전 등 선관위 직원의 ‘범죄 사실’을 나열했다. “전형적인 화풀이 감사”라는 선관위 관계자의 볼멘 소리를 흘려 듣기 어렵다.
이번 감사는 정치권에 약한 감사원의 현주소를 보여 주었다. 감사원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온 ‘열린 감사ㆍ투명 감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선관위에 대한 현장 감사가 정당했다면 재감사를 해서라도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 투명성을 높이는 방편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동준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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