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슈피겔 최근호(18일자)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미국은 전 세계에서 패권적 지위를 누리려 하나 세계는 결코 미국의 지배를 허용할 만큼 작거나 단순하지 않다”고 말했다.홉스봄은 “미국은 고대 로마제국과 19세기 대영제국의 역사에서 ‘제국의 힘에도 한계가 있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며 “최근의 대 테러전 등 전 지구적 파병은 늘 폭발 위험성을 안고 있는 지역에 불더미를 던지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9ㆍ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은 스스로 세계 지배권력으로 등극하려는 냉전 시대부터의 정책을 공고히 하고 있지만 현재 미국에겐 전체를 관통하는 어떠한 장기적인 계획도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현재 중국을 제외한 어떤 개별 국가와 전쟁을 해도 승리할 수 있지만 전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한 그는 “미국은 과대망상증이라는 ‘직업병’을 앓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홉스봄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이 21세기에는 세계를 지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군사개입을 통한 미국의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이며 더욱이 미국의 지배력이 식민지가 아닌 위성국 체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위성국가들의 저항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홉스봄은 현재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배경으로서, 유엔이 미국 등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로 실제적인 힘을 갖지 못하는 것과 경제ㆍ문화적으로는 어느 정도 세계화가 진행된 데 반해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민족국가가 유일한 정치적 단일체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 행정부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등 세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대립 구조로 몰고 가는 것은 미국의 상투적인 세계전략이며 이는 냉전시대 소련을 ‘악마의 제국’으로 묘사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미국이 이들 3개국을 특별히 위협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럽의 현실에 대해서는 “지난 냉전 시대처럼 미국과 유럽은 더 이상 가족 같은 관계가 아니다”며 “미국의 간섭을 받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방위조약을 폐기하고 유럽만의 독자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로 85세를 맞는 홉스봄은 이념대립과 전쟁 등 20세기의 비극적 측면을 다룬 ‘극단의 시대’와 ‘자본의 시대’ ‘혁명의 시대’ 등 일련의 근세 역사서로 근대사와 경제사 분야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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