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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 안대회교수 글 8편 발굴 일반공개 "천제문인 노긍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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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 안대회교수 글 8편 발굴 일반공개 "천제문인 노긍을 아시나요"

입력
200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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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문단에서 천재적 재능을 발휘했으나 그동안 까마득히 잊혀졌던 작가 노긍(盧兢ㆍ1737~1790)이 한문학자의 노력으로 뒤늦게 진면목을 찾았다.안대회(安大會ㆍ41) 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최근 계간 ‘문학과경계’ 봄호에 노긍의 생애와 그의 소품문(짧은 한문산문) 중 묘지명,수필 등 8편을 일반에 처음 공개했다.

이 작품들은 노긍의 후손이 1960년대 발간한 ‘한원유고’(漢源遺稿)에 수록됐던 것이다.

노긍은 청주의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당시 세도가인 홍봉한(洪鳳漢)의 집안에서 과거 선생으로 지내다 영조 47년(1771) 누명으로 쓰고 평안도 오지인 위원군(渭原郡)에서 6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이후 불우하게 살다 죽음을 맞은 그는 당시로서는 내용과 형식 면에서 파격적인 시 528편과 산문 215편을 남겼다.

특히 그는 사대부 문학에서는 잘 쓰지 않던 구어체 한문인 백화문(白話文)을 자유로이 구사하는가 하면 노비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을 소재로 삼는 등 파격을 보여줬다고 한다.

노긍이 활동했던 18세기는 성리학이 지배하는 관념적 한문학 풍에서 벗어나 작가의 사생활이나 미적인 내용을 다룬 개성적 글쓰기가 대두되던 시기.

안 교수는 “노긍은 기존 글쓰기에 반발한 박지원과 동갑으로 소품문에 주력한다는 점에서는 그와 비슷했지만 훨씬 파격적인 글로 박지원을 뛰어넘었다”고 밝혔다.

예컨대 노긍은 ‘네 놈이 수단을 부려 10만8,000리를 근두운을 타고 날아다니는 손오공의 신통한 기량을 발휘한다고 쳐보자. 아무리 날뛰어도 부처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중국 고전이 아닌 소설을 인용하는 담대함을 보였다.

또 아버지의 구명을 위해 뛰어다니다 귀양살이를 갔던 장남 면경(勉敬)의 묘지(墓誌)에서는 ‘동해 해돋이 구경을 갔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안 교수는 노긍은 “생계를 거들떠보지 않고 폭음을 일삼고 해괴한 짓을 잘 저지르는 특이한 사람이었다”며 “그의 기행은 몰락한 집안의 선비로서 세상과 불화를 겪는 자의식이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노긍은 문학은 자의식의 분열과 해체적 경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시인 이상(李箱)과 견줄만하다”며 “노긍을 통해 우리 문학에서 현대성이 발현된 시기를 훨씬 앞당길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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