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TV 읽기 / MBC특집드라마 '가리봉 엘레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TV 읽기 / MBC특집드라마 '가리봉 엘레지'

입력
2002.03.19 00:00
0 0

어느덧 방송에서 조선족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가 된 듯하다.‘옌볜 총각’이 코미디 프로그램의 인기 코너로 활약하고 있고 드라마와 시트콤에서도 조선족이 조연으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조만간 방송에 복귀하는 최진실도 옌볜 출신의 처녀 역을 맡을 것이라고 한다.

17일 방송된 MBC 특집 드라마 ‘가리봉 엘레지’(이기복 극본, 박복만 연출)도 조선족이 주인공이다.

독립유공자의 손자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태식(이영준)과 위장 결혼으로 한국에 온 동숙(정은경), 주식투자로 빈털터리가 된 한국인 준기(김유석)의 삼각 관계가 기본 줄거리다.

태식은 국적 취득 후 동숙과 결혼하고 싶어하지만 준기의 사기극에 휘말려 중국으로 추방된다.

만신창이가 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태식을 본 준기는 일말의 양심을 느껴 동숙과 태식을 맺어준다.

드라마는 삼각관계 내내 조선족이기 때문에 겪을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불심검문과 추방, 한국인들에 의한 사기 멸시 폭력 그리고 그 속에서 겪는 조선족의 눈물과 분노 희망 절망 등등.

자연스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되는 한국인과 조선족의 권력관계는 다분히 현실적이어서 그동안 방송에서 그려지는 조선족들을 보며 생각없이 웃어댔던 경험이 부끄러워질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드라마의 현실성은 극 후반부에 가서 돌연 사라진다.

여전히 불법체류자로 달라질 것 하나 없는 태식과 동숙의 앞날은 행복하게 웃음짓는 결혼식 장면만으로 간단하게 해결된다.

조선족이면서도 완벽한 서울 말씨를 구사하는 나씨(정승호)를 비롯한 주변 조선족들의 사연도 흐지부지 끝난다. 백수건달이었던 준기가 공사장 인부가 되어 공사판에 핀 꽃을 캐낸다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해피 엔딩이다.

’가리봉 엘레지’의 해피 엔딩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극적 완성도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방송이 조선족을 그려내는 상투적인 시각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죽도록 고생하며 세상 물정을 잘 몰라 겪지 않아도 될 고생까지 떠안는 조선족의 가련한 인생은 코미디나 시트콤에서 엉뚱한 언행을 하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 웃음을 자아내는 조선족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오래 전 드라마나 코미디에서 빠지지 않았던, 보따리 하나 들고 갓 상경해 공장 친척집 술집을 전전하는 시골 처녀를 연상시킨다.

이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순식간에 지워버리며 끝나는 드라마 때문에 시청자들은 느긋하게 안방에 앉아 TV속 시골 처녀의 고생담을 적당히 안타까와하다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현실을 잊어버리고 마는 20년전으로 퇴행하게 된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