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자리가 얼마나 좋은지, 그거 안 해 본 사람은 절대 모른다.”1992년 대통령 선거때 인구에 회자되었던 어느 정치인의 명언(?)이다.
나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당면해 있는 가장 큰 문제의 핵심이 바로 이 말 한마디에 농축돼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니 ‘개혁’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말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진실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엔 민주화와 개혁을 해보겠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권력욕과 명예욕도 원없이 다 누리면서 좋은 일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심지어 돈 욕심까지 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걸 잘 보여주는 것이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으로 대표되는 민주 정권의 사람들이다.
민주화에 대해 시큰둥해 하는 박정희 지지자들은 “그거 보라”며 박정희를 존경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발견하다.
민주 인사들의 민주화 노력마저 개인적인 탐욕으로 얼룩진 ‘밥그릇 싸움’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이른바 ‘박정희 신드롬’은 두 민주 정권에 대한 그런 실망이 빚어낸 역사적 비극이 아닐까.
김 정권이 지금과 같은 정치적 난관에 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논공행상식 인사에서부터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호남 위주의 인사는 그 당연한 귀결이었을 뿐이다. 논공행상식 인사가 무조건 잘못된 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장관직에서부터 각종 국·공영 기업체의 임원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위직이 ‘전리품’으로 간주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탐을 낸다는 데에 있다.
왜? 남들이 알아주는 막강한 권력, 많은 월급과 퇴직금,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판공비, 최고급 승용차에 운전기사, 넓은 집무실과 비서들 등과 같은 혜택 때문이다.
누구 말마따나 그걸 누려보지 못한 사람은 그 맛과 멋을 모른다. 공복(公僕)? 가소로운 소리다.
나는 제안한다. 한국 사회의 모든 고위직에 돌아가는 그 엄청난 혜택을 확 줄여 버리자.
고위직은 출세가 아니라 고행(苦行) 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자. 누가 고위직에 임명되면 축하가 아니라 위로를 받게 만들자.
말도 안되는 치기(稚氣)일까? 하긴 나는 김 정권 출범시 김 대통령에게 재산이 너무 많다며 재산의 반을 국가에 헌납하라는 내용의 글을 발표했다가 일부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제안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부터 그런 무서운 긴장을 보여 주었더라면 김 정권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민주화’니 ‘개혁’이니 하는 거창한 말 앞세울 것 없다.
모든 고위 공직자들이 명실상부한 공복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상 획기적인 민주화와 개혁 조치는 없으리라 믿는다. 한국의 고위 공복들은 너무 배가 불러 탈이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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