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이 이런저런 루머가 나돌았다. 그러나 행장 추천위원회가 가동된 2월 하순부터 김극년(金克年.62) 대구은행장의 연임은 확실한 대세로 굳어졌다.단독 추천, 이견이 없는 동의. 지난 8일 주총에서 참석자들은 제8대 행장으로 다시 한 번 대구은행 중흥의 키를 잡은 김 행장에게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2년여 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고난을 딛고 경영정상화의 소중한 기틀을 다진데 대한 주주와 직원들의 성원이었다.
김 행장은 파격적이거나 화려한 스타일의 ‘튀는’ CEO는 아니다. 오히려 조용하고 신중한 전통적 은행원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런 그도 요즘은 넘치는 자신감을 숨기지 않는다.
김 행장은 “지난해엔 부실처리를 먼저 이룬 시중은행들의 실적이 눈부셨지만 올해는 주가와 실적 면에서 지방은행의 해가 될 것”이라며 “대구은행은 이제 막 대지를 박차고 솟구치기 시작한 제트기”라고 말했다.
환란 이후 우방 등 지역 연고 기업들의 잇단 도산으로 대구은행 역시 극심한 위기를 겪었지만 공적자금은 받지 않았다.
부실처리와 구조조정을 온전히 은행 자력으로 해결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고통과 스트레스가 컸다.
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응집력을 회복한 대구은행의 저력은 계량적인 목표관리나 효율성에 앞서 ‘인간’을 가장 중시한 김 행장의 경영 철학으로부터 나왔다.
김 행장은 “은행은 특히 사람을 운용한 사업”이라며 “과거 3,400명 선이던 직원수가 2,100명 선으로 줄어드는 격동기를 보내면서 내내 머릿 속을 맴돈 화두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나가는 직원이든, 남게된 사람이든 그들의 마음을 잡는데 온 힘을 쏟았다고 했다.
지난해초 추가 명퇴자 200명에 포함된 지점장급들과 식사를 하며 그는 영화 ‘버티컬 리미트’의 한 장면을 비유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암벽타기를 하다가 위기를 맞습니다. 위쪽에 걸려 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줄을 끊으라고 절규합니다. 우리의 상황이 이와 같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지난해초 명퇴는 1947년생을 분기점으로 이루어졌는데, 자녀들이 결혼 적령기라 내내 마음이 아팠다”고 돌이키면서 “명퇴 직후 행내에 재취업 지원센터를 만든 것도 그런 서운함을 조금이라도 달래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행장의 ‘인간 중심’ 경영은 그의 대표적 경영성과로 꼽히는 ‘지역 밀착 경영’으로 이어지고, 다시 대구.경북 지역의 독특한 정서와 맞물리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대구은행 주주 70.78%가 개인”이라며 “이 가운데 대부분이 대구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 고객은 고객이자 주주”라고 말했다.
지역 공단내 중소기업 경영지도에서부터 ‘독도 지키기 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기여사업은 대구은행에 대한 지역민들의 로열티를 높이는 대표적인 마케팅 수단이다.
김 행장은 “‘지역 밀착 경영’을 축으로 각종 지역금고 수탁이나 기관예탁금 등 원가가 적게 드는 예금 비율을 현재 33%에서 더욱 넓혀나가고 있다”며 “지난해 30%를 돌파한 대구.경북 지역 수신점유율 역시 대구은행에 대한 지역민들의 후원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섬유 등 대구의 전통 제조업의 위축에 대해 그는 “그동안 점진적 여신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전체 여신 중 섬유업종 여신비율을 13%대로 낮췄다”며 “대신 자동차, 기계 부품, 기계 금속 업종 등 성장 기반 산업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섬유산업에 대해서도 “현재 추진 중인 ‘밀라노 프로젝트’에 따라 이들 기업이 염색연구소, 패션센터 등으로 탈바꿈하는데다 월드컵과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하반기부터 활황을 맞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구은행 점포는 2001년 현재 지난해보다 6개가 줄어든 182개이다.
그러나 김 행장은 “지역에 기반을 둔 ‘작고 강한 은행’으로서 대구은행의 성장여지는 크다”며 “올해 경영목표는 부실 추가 정리 등을 통해 고정이하 여신 비율을 2%대로 낮추고 당기순이익을 지난해 3배 수준인 1,250억원을 달성하는데 맞추고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약력
.1940년 경북 의성 생
.1964년 고려대 법학과졸
.1968년 대구은행 입행
.1989년 상무이사
.1999년 부행장
.2000년2월 은행장
.1971년 재무부장관 표창(저축유공)
.1988년 산업포장(노사화합)
.2001년 ‘2001년 베스트 CEO’ 선정(타워스페린, 한경비즈니스)
.황정자(黃貞子) 여사 외 2남
.등산
장인철기자
icjang@hk.co.kr
■대구은행은
지난해말 현재 총자산 15조9,002억원, 총여신 7조6,614억원, 총수신 12조9,509억원을 기록하고 있는 최대의 지방은행이다.
삼성생명(8.08%)이 최대주주이며 개인 주주가 70.78%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경영정상화 과정을 밟아 고정이하 여신비율을 전년 8.69%에서 3.73%로 낮췄다.
추가적인 부실여신 상각과 자산관리공사(KAMCO) 환매채권 매각 등 올해 부실 정리를 매듭지어 고정여신 비율을 최우량 은행 수준인 2%대까지 낮출 계획이다.
대구.경북지역 수신점유율 30%를 차지하는데다, 저원가성 예금이 전체 수신의 33%에 달하는 등 영업.수익 기반이 견고하다.
부실 상각 부담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여ㆍ수신이 10% 이상 성장한데 힘입어 지난해말 당기순이익이 전년 보다 2배 증가한 307억원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1,25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이다.
최근 기대보다 빨리 주가가 액면가를 돌파해 5,900~6,000원에 이르는 등 1999년 6월 발행한 5,000만달러 규모의 해외전환사채(CB) 만기 상환을 앞두고 주가 관리도 순조롭다.
다만 CB 전환 시 주가 희석 가능성, 우량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충당금 적립비율(54.9%) 등으로 주가 수준이 아직은 우량은행에 비해 낮은 편이다.
장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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