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업계 사상 최대의 빅딜로 꼽히는 휴렛 팩커드(HP)의 컴팩 인수 여부를 결정할 HP 주주총회가 19~20일(미국시간) 개최된다.HP와 컴팩의 짝짓기 성공여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230억달러짜리 초대형 M&A로, 세계 컴퓨터ㆍ프린터 업계 판도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HP의 컴팩인수 성사여하에 따라 ‘여걸’ 칼리 피오리나 HP회장의 운명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HP의 컴팩 인수는 M&A를 밀어붙이려는 경영진과 이를 강력히 반대하는 대주주의 대립으로 처음부터 난항을 겪어왔으며, 주총이 임박한 현재까지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다.
피오리나의 ‘승부수’로 불리는 이번 딜이 무산된다면 그녀는 경영일선에서 퇴진할 수 밖에 없고, ‘피오리나 신화’도 함께 막을 내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경영진을 대표하는 피오리나측과 HP 창업자로서 대주주인 휴렛 가문측은 주총의 표대결에 대비,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막바지 세력결집에 총력을 쏟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주까지 대주주측은 21%의 기관투자가를 반대표로 흡수한 반면, 피오리나측은 8% 확보에 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정황은 피오리나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최대 기관투자가중 하나인 뱅크 아메리카(BA)가 합병반대를 선언했다. 600만주의 HP주식을 보유한 BA는 “HP의 컴팩인수는 기업가치를 떨어뜨린다.
주총에서 합병반대에 표결하고 이와는 별도로 5,400만주의 신탁주식을 맡긴 고객들에게도 반대를 권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660만주를 갖고 있는 금융기관 웰스 파고도 “컴팩 인수는 전략적 실패를 가져올 수 있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최대연기금중 하나로 HP지분 1%를 보유한 캘퍼스(캘리포니아연금재단)도 합병반대를 결정했고, 온타리오 교원연금도 반대표 쪽에 섰다.
휴렛 가문측은 “19일 주총에서 컴팩인수는 확실히 저지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주주는 아니지만 HP와 컴팩의 거래업체들도 합병에 반대하고 있다.
메릴린치가 두 회사 거래업체 10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HP고객의 42%와 컴팩의 고객 46%가 합병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찬성하는 거래업체는 HP쪽 26%, 컴팩쪽 25%에 불과했다.
업계는 두 회사 합병의 가장 큰 후유증으로 고객업체의 이탈을 우려한 만큼, 이 같은 고객사들의 반대는 합병을 추진하는 경영진에 큰 부담이 된다.
또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한 기관투자가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오리나측은 19일 주총에서 합병안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합병을 지지하는 기관투자가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게 경영진측 설명이다.
특히 유럽에 이어 미국공정거래위원회(FTC)가 양사 합병안을 승인한 것에 크게 고무되어 있다.
경영진측은 제너럴 일렉트릭(GE)과 하니웰의 합병이 유럽경쟁당국의 승인 거부 때문에 무산된 점을 상기시키며, HP와 컴팩의 합병은 법적 걸림돌이 완전히 제거됐음을 강조하고 있다.
잭 웰치 전 GE회장은 지난해 하니웰과 합병무산으로 ‘살아있는 경영신화’에 흠집을 남기며 불명예 은퇴의 길을 걸어야 했다.
‘여성 잭 웰치’로 불리우는 피오리나 HP회장이 합병무산으로 잭 웰치의 전철을 밟게 될지, 아니면 막판 대역전극을 성공시켜 신화를 이어갈지 세계 경영계의 관심은 HP주총에 쏠리고 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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