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 한 친구가 “현재에 충실하면 미래가 잘 될 것”이라는 불교 법문을 새해 덕담으로 보냈다.우정이 녹아있는 글귀를 읽으면서 변변한 베스트셀러 하나 없이 버텨온 현재의 처지를 되돌아보게 됐다.
책이 좋아 대학졸업 후 인생의 방향을 출판업으로 정했고, 책에 미쳐 지내다 보니 청춘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출판업에 종사하며 배운 것은 “책을 시장 논리에만 맡긴다면 좋은 책은 세상에 나오기 어렵다”는 교훈이다.
서점에 가면 정말 ‘아무 생각없이’ 책을 집는 독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이 추천한 책이나 베스트셀러 코너에 꽂힌 책을 주저없이 고른다.
TV에서 보았거나 남이 읽는다는 사실이 책의 품질을 검증하는 수고를 덜어준다고 믿는 모양이다.
반면에 아이를 낳고 키우고 출가 시키는 심정으로 밤을 새며 만들어낸 책이 진열대 한 구석에 처박혀 눈길 한번 받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이래서는 좋은 책이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주장하고 싶은 것이 정부의 책 구입예산 확충이다.
수요자가 없는 상품을 공공 지출로 구매하는 것은 시장논리에 반하는 처사로 보인다. 과연 그럴까?
흔히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 인프라가 확충돼야 한다고 말한다. 도로, 통신 등 경제활동의 기반이 인프라라면, 일반 대중이 사려 들지 않는 좋은 책을 공공부문 지출로 구입하는 일은 지적 인프라 구축의 출발점이다.
문화관광부는 월드컵을 앞두고 관광관련 사업에 약 40억원을 배정했다고 한다. 이는 1만원짜리 책 40만권을 살 수 있는 돈이다.
1,000권씩 구입한다면 400종류의 좋은 책을 살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1,000권이 시장에서 소화된다면 출판사는 옥고(玉稿)들을 구석에 쌓아두지 않아도 된다.
책 읽기가 취미이고 수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는 관료, 정치인이 많다고 한다. 틈만 나면 ‘지식 정보 국가’를 외치는 당국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린다.
변녹진·계백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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