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8월 청운의 뜻을 품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던 날이 생각난다.여의도 백사장에서 유학생만을 태운 프로펠러 전세비행기에 달랑 50달러의 여비를 가지고 올라탔고, 힘든 유학생활이 시작됐다.
그러나 참고 견디며 공부했고, 인디애나대에서 학위를 받은 뒤 결국 1966년 존스 홉킨스대 물리천문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그로부터 35년. 학자로서의 생활을 맘껏 즐겼고, 내 집이라 생각했던 그곳을 이제는 떠나려 한다.
1996년 10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기관으로 설립된 고등과학원(KIAS)에 처음엔 파트타임 교수로 방문해 97년부터 원장직을 맡아 오면서도 휴직 신청을 연장하며 유지해왔던 존스 홉킨스대 교수 자리를 7월부터는 그만두려 한다.
원장직에 취임한 것은 1997년 12월18일이었다. 그때는 몇 년 남지않은 학자생활에 논문 몇 편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3년의 임기 동안 한국 기초과학 발전을 위해 고등과학원의 기반을 닦은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연구에 전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미국 교수시절에도 행정과는 큰 관련이 없었던 내가 기관장 자리에서 책임을 지는 것도 조금은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결심을 했다. 한국에 남아 마지막 몇 가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 기초과학이 커나가는 데 일조해야겠다는 것이다.
고등과학원의 영어 약칭은 ‘Korea Institute for Advanced Science’이다. 말 그대로 조금 더 높은 수준의 과학을 연구하는 국가 기관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한 조금 더 높은 수준, 즉 ‘고등과학’은 어떤 특정한 기술에 대한 연구가 아니다.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기초 과학분야의 이론적인 부분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고등과학원은 특별한 실험시설이나 장비를 갖추지 않고 있다. 실험을 하기 위한 바탕이 되는 기초적인 이론을 확립하는 것이 바로 고등과학원 연구진의 임무다.
대학에서도 많은 기초과학 연구를 진행 중이지만 우리에게는 임무(mission)가 주어져 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관인 만큼, 기초과학연구에 있어 ‘중력의 중심’이 돼야 하는 것이다.
고등과학원은 이제 걸음마 단계를 지났지만 아직도 안심하고 걸어다닐 정도는 아니다. 교수진과 시설을 더 확보해야 하고, 국민의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을 더 향상시켜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 것이 기초과학의 중요성이다.
낚시와 물고기론을 예로 들어 보자. 빵이나 생선을 배고픈 사람에게 직접 주는 것과 농사와 낚시법을 가르쳐주는 것을 비교하면, 후자가 처음에는 굶주릴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꽃이 피고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기 마련이다.
바로 그것이 기초과학의 힘이다.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한국이 이만큼 발전한 것은 정치, 경제의 힘이 아니다. 바로 과학기술 덕이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입국을 주창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급한대로 돈을 벌기 위해 그 당시에는 기술 우선정책을 추구했다. 그 때 돈의 일부만이라도 기초과학에 투자했더라면, 우리는 더 달라진 환경에 살고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각 국가는 가장 힘든 시기에 기초과학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일본과 독일이 전후 경제기적을 이루는 데 기반이 된 이화학연구소와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모두 1917년에 문을 열었다.
힘든 시기에 살 길은 기초과학 연구 밖에 없다는 과학자들의 호소에 따라, 빌헬름 황제의 지시로 건물도 없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지금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다.
고등과학원이 모델로 삼은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는 대공황 시기인 1930년 독지가의 도움으로 문을 열었다.
우리의 경우도 비슷하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던 무렵 취임했던 나는 주변의 우려를 많이 들었다.
처음 고등과학원장에 취임하고 1년 뒤 예산부처 사람을 만났더니 “아직도 고등과학원이 운영되고 있느냐”고 놀라는 일도 있었다.
1996년 교수 3명, 연구원 3명으로 출발했던 고등과학원이 이렇게까지 커온 것은 출발을 준비했던 여러 사람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기초과학에 대한 국가 차원의 투자가 시작됐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 늦게 시작했지만 지금이라도 기회는 있다.
요즘 국가 차원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생명공학(BT)이나 나노기술(NT) 연구는 모두 기초과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는 분야임은 자명하다.
지금 기초과학의 기반을 다져서 BT, NT에서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는 뒤쳐질 수밖에 없다.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앞으로는 기술도 팔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래서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초가 튼튼해야 모든 것이 바로 서지 않던가.
나는 그런 이유들로 인해, 정년이 없는 존스 홉킨스대 교수직을 완전히 떠나 한국의 기초과학 발전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
김정욱/한국고등과학원장
■김정욱 원장은 누구
한국 기초과학의 산실 고등과학원(KIAS) 김정욱(金正旭) 원장은 소립자이론을 전공한 물리학자다.
1938년 일본에서 태어난 김 원장은 1958년 서울대를 수석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66년부터 미국 존스홉킨스대 물리천문학과 교수로 재직해 왔다.
중성미자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로 평가받는 김 원장은 1997년 12월부터 고등과학원의 초대 원장직을 맡아 한국 기초과학의 틀을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