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문화월드컵'으로 치르겠다는 구두선이 인구에 회자된다. 스포츠는 두말할 것 없이 그 역사적 기원만으로도 '문화제전'이기 때문이다.문화제전이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온갖 문화가 넘나들면서 문화다원주의를 실험하는 하나의 장터 같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월드컵 사전준비품목에는 우리의 문화력 점검도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
얼마 전에 성남시에서는 개고기시장으로 유명한 '모란시장'의 대대적인 정화를 선언하였다.
88올림픽 때도 개고기가 논란이 되어 뒷골목으로 쫒겨갔고 그 뒤로도 국제경기만 열리면 심심찮게 개고기는 국제뉴스의 표적이 되곤 했다.
얼마 전에 김동성 선수에게 ‘분풀이로 집에 가서 개에게 발길질하고 잡아먹었을 것’이란 미국방송의 폭언이 네티즌들의 분노를 산 일도 있다.
눈길을 중국으로 돌려보자. 중국에서는 올림픽 사전준비로 외신기자들을 대거 개고기집으로 안내하여 당당하게 자국의 음식문화를 소개한 바 있다.
광동요리로 유명한 ‘음식문화 1번지’ 광쩌우를 가보자. 한국의 모란시장과 흡사한 칭핑스창(淸平市場)에서는 거북이, 두꺼비, 심지어 뱀도 버젓이 팔고 있다.
가히 몬도가네에 가깝게 무슨 버러지 같은 식용재로도 팔고 있다. 향육이라 하여 개고기가 인기를 끌고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고 하여 올림픽을 앞두고 이들 가게들이 철퇴를 맞거나 국제뉴스의 표적이 된 일이 없다. 그렇다면 왜 유독 우리만 ‘국제적인 봉’인가.
한국인들 스스로 매우 세계적인 문화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착각하는데 기실 정반대다. 진정한 국제적 문화감각은 문화다원주의를 견지하는 데서 드러난다.
햄버거를 비롯한 다국적 음식문화에 전면적으로 노출된 현실은 문화획일주의화의 표본에 불과하다.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살리면서 타문화에 대한 공동선을 취하는 중심잡기 없는 세계화는 남의 장단에 춤추는 못난이 짓.
월드컵에 수많은 외국인이 몰려올 것은 자명하다. 우리 음식점을 가보자. 곳곳에 소갈비집과 토종닭집이 무성할 뿐 정작 토종음식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정갈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의외로 드물다. 외국인의 음식선택권이 매우 제한적이다.
외국나들이에서 먹는 것과 잠자리처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먹는 차림표가 마땅치 않으면 스포츠관람도 왠지 허전해지는 법.
내방객들이 행여 ‘배고픔’에 시달리다 갈지 걱정이 앞선다. 한국사회의 음식문화가 획일화를 거듭해온 결과 빈곤한 식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잔치준비에는 역시 음식이 중요하다. 진수성찬은 그만두더라도 먹을게 거의 없다는 발언이 나와서야 손님접대의 정당한 방식이 아닐 것이다.
중국인들이 한국방문기간 동안 늘 배가 고프다는 말을 그냥 우스개로 넘겨서는 안 된다. 온통 커피대접으로 획일화 되었을 뿐, 아시아의 수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마시는 차대접은 거의 없다.
중국인에게 마시는 차가 없다면? 어서 떠나라는 선언과 같지않을까. 우리의 세계화는 미국문화 따라 하기 방식일 뿐 아시아의 친구에 대한 준비는 소홀한 결과이다.
음식을 시키려니 마땅한 정보가 부족하고, 값은 비싸고, 배는 고프고, 마시고픈 차는 없다는 불평이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구미언론의 눈치나 보면서 개고기집을 ‘탄압’할 방도만 찾지 말고 그런데 쏟을 역량을 문화다원주의 확충에 돌림이 나을 것이다.
문화다원주의란 남의 것을 제대로 인정하고, 자신의 것도 제대로 자리매김할 줄 아는 풍토에서나 가능하다.
온갖 인종이 모여드는 월드컵제전이 문화다원주의의 들끓는 용광로가 되어 한국사회가 또 한번 질적 도약을 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주강현=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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