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영화감독 켄 로치(67)는 노동자의 삶과 투쟁에 주목해 온 사회파 거장이다. 이 대가는 노동운동이 종말을 고한 90년대 후반 이후에도 고집스럽게 노동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다.어린 딸에게 드레스를 사주려고 애쓰는 실직자의 고투를 감동적으로 다룬 ‘레이닝 스톤’처럼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실업으로 고통받는 하층민의 힘겨운 살이가 등장한다.
지난 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초청 작 ‘내비게이터’도 철도 민영화로 일자리를 잃은 선로 조사원들의 애환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근대사는 노동운동의 변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술과 노동을 천시하는 사회풍토, 철도ㆍ석탄ㆍ부두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 노사간 극한대립의 악순환은 화려했던 대영제국의 심장을 갉아 먹는 ‘영국병’의 근원이었다.
잦은 파업과 비효율로 국영 기업체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쌓여 갔고 성장엔진의 동력은 꺼졌다.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됨으로써 IMF로부터 신탁통치까지 받게 된 영국은 공기업 민영화를 돌파구로 삼았다.
■ 그러나 영국의 철도 민영화는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최악의 실패사례로 꼽힌다. 공공재적 성격이 짙은 철도의 특성을 무시하고 경영을 민간자본의 이윤논리에만 맡겼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선로 현대화 비용을 민간 기업 혼자 짊어지고 간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결국 선로 등 시설의 노후화에 따른 잦은 사고와 부실 경영으로 헐떡이던 영국 철도는 부도를 선언하고 재국유화를 논의하는 애물단지가 돼 버리고 말았다.
■ 우리나라에서도 기간산업에 대한 민영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민영화를 반대하는 발전노조 파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공기업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자율적 기능에 의해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민영화는 세계적 추세다. 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민영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자유로운 경쟁과 공공재 성격을 살리기 위한 시장감시가 없는 민영화는 안 하느니 만 못하다.
영국의 실패에서 민영화의 한계와 함정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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