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오후의 나른한 햇볕이 거실에 까지 들어찬 지난 주 경기 분당의 이주일(李朱一ㆍ62ㆍ본명 정주일ㆍ鄭周逸)씨 집.힘들게 간이침대에 나와 앉은 이씨의 눈은 거실벽 한 쪽의 사진에 자주 멎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연도 시민의 환호를 받으며 성화봉송주자로 뛰던 모습이다.
“저렇듯 건강했었는데.” 얼굴 살이 빠져 더 커져 보이는 검은 테 안경 너머로 언뜻 물기가 비쳤다.
지난해 11월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이주일씨가 18일부터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역정을 한국일보에 털어 놓는다.
국립암센터 병실에서, 혹은 집에서 그는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한마디 한마디를 풀어냈다. 귀를 입에 갖다 대야 들릴 정도의 낮은 목소리도 가쁜 숨과 함께 2~3분마다 끊겼다.
힘들어 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운 부인 제화자(諸花子·64)씨가 남편의 ‘의지’를 만류하기도 했지만, 이씨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회고록을 통해 내 삶을 한번 정리하고 싶었어요. 연예인 칼럼이 전무했던 1980년대에 유일하게 내 글을 실어준 게 한국일보 입니다. 그 인연을 잊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지요.”
그는 85년 1월20일부터 매주 일요일 한국일보 8면에 ‘뭔가 말 되네요’라는 시사ㆍ문화 칼럼을 6개월 여 동안 연재했다.
당시 한국일보 문화부장으로 재직하며 칼럼 연재를 결정했던 장명수(張明秀) 한국일보사장은 “이씨 칼럼이 나가면 ‘글을 정말 코미디언 이주일이 썼느냐’는 독자 문의가 빗발쳤을 정도로 글의 완성도가 높았고, 늘 화제가 됐다”고 회고했다.
주치의 이진수(李振洙) 국립암센터 부속병원장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이씨는 항암제 투여로 인한 식욕 저하와 운동부족으로 인한 체력 저하말고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
다만 산소호흡기를 코에 꽂은 채 거동과 외출은 거의 삼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지만 병상에 누었어도 그는 여전히 우리의 코미디언이었다. 그토록 힘겹게 구술을 마치고도 그는 일어서는 기자에게 한마디씩 농담을 잊지 않았다."사람들이 요즘 자주 찾아오는 걸 보니 미리 조의금이라도 거둬야겠어."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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