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게 길을 묻다조선 성종 1년, 고위관리이자 왕의 외척인 김정광이란 자가 뇌물을 받아 처벌된 일이 있다.
수사에 나선 의금부가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자 사헌부가 재수사를 한 끝에 그는 곤장 100대를 맞고 종으로 신분이 떨어져 변방으로 ?i겨났다.
또 장안(月+臧/案:뇌물죄를 지은 관리 명단)에 이름이 실렸는데, 장안에 오르면 그 후손은 대대로 벼슬길이 막혔다.
이덕일의 ‘역사에게 길을 묻다’ 중 ‘부정부패, 망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나오는 내용이다.
줄줄이 터져나오는 무슨 무슨 게이트,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직자의 비리 사건이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비웃는 요즘 현실에 비춰보면, 500여 년 전 조선 사법부의 서릿발 같은 단죄가 참 대단해 보인다.
사건마다 흐지부지 처리되고 처벌받은 자도 얼마 지나면 사면되곤 하는 것을 참 많이도 보아온 터라 더욱 그렇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이 책은 역사의 거울에 오늘을 비추어 나아갈 바를 찾는다는 의도에서 쓰여졌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종친의 정치 개입, 관리의 부정부패, 정권 수립에 기여한 공신들의 권력 나눠먹기 등을 우리 역사를 망친 것들로 지목하면서, 그와 닮은 꼴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나 측근들의 권력 남용 등을 나란히 대조하는 식이다.
또 고려 말과 조선 건국 초기 100년 간의 개혁 투쟁을 오늘의 상황에 견준다든지, 조선 사법부와 대한민국 사법부를 비교하는 식으로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있다.
아울러 현행 국사 교과서의 문제점, TV 사극의 역사 왜곡, 일제의 잔재를 완전히 떨치지 못한 국내 사학계의 어둠을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을 이루는 11편의 글은 역사를 소재로 한 대중적 칼럼에 가까워 읽기 수월하다. 반면, 전체 짜임새는 별로 긴밀하지 못해 여러 군데 내용이 겹치고 글에 따라 완결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조선시대 왕에게 목숨을 걸고 직언했던 대간들의 역할을 전하면서, 그처럼 언로가 열릴 수 있었던 제도적 장치에 대한 언급은 빠뜨리고 있다.
그 결과 ‘선조들은 대단했지, 그런데 지금 우리는 왜 못그러지?’ 하는 감탄과 자괴감을 넘어선 적극적인 처방을 찾기는 어렵다. 역사에 길을 물었으되 답은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학사 발행ㆍ9,000원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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