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소득 의사들의 수가인하는 당연하다.’ ‘병원ㆍ의사들 다 망한다. 오히려 올려야 한다.’의료수가 인하를 놓고 의료계가 또 소용돌이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의료수가 2.9% 인하(내달부터 적용)가 결정되면서 이에 반발한 병ㆍ의원들이 법적 소송과 진료중단까지 들먹이며 강경대응에 나서 의료대란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사실 의료수가는 건강보험공단측은 더 적게, 의사들은 더 많이 주고 받으려는 생리를 갖고 있는 해묵은 현안.
이를 놓고 올해에는 의료계와 보건당국, 시민단체들간에 논쟁이 치열하고 의사들의 실력행사 조짐까지 보이고 있어 시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끊없는 논쟁
의료계 반발을 사고 있는 의료수가 인하의 근거는 지난해말 발표한 서울대 경영연구소의 ‘병ㆍ의원 경영수지 분석자료에 의한 원가분석 연구’. 이 보고서는 병ㆍ의원 원가분석을 통해 전체적으로 8%의 수가 인하 요인이 있다고 결론내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도 병ㆍ의원 원가를 기준으로 할 때 의원은 무려 16% 인하요인이 있고 병원은 7.8% 인상요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분석이 맞다면 동네의원의사들은 건보공단으로부터 그만큼을 덜 받아야 옳다.
보건복지부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의약분업 후 15~43%나 폭증한 병원의 진료비(약제비 제외) 수입 내역’ 등을 공개하며 수가인하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2.9%의 수가인하는 의사들의 수입을 감안한 마지노선”이라며 “이마저 수용을 거부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민ㆍ사회단체들도 “돈 많이 버는 소수 의료인을 위해 국민을 죽이려는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 등의 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수가의 추가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의료계의 입장 역시 단호하다. 병원협회측은 의사 이직 등에 따른 임금 상승과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30%이상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수가를 내렸는 지 이해하기 조차 어렵다”며 “의사들의 이직을 막기 위해 의사 1명당 월 평균 200만원의 월급을 올려줘야 할 만큼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병원협회는 입원료ㆍ조제료 인상까지 요구하고 있다.
의사협회 역시 서울대 보고서는 의사들의 대폭적인 수입 감소를 가져 온 건강보험 재정 안정대책(2001년 7월) 이전인 2001년 상반기 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과는 괴리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재정안정대책으로 이미 수가가 12%나 인하된 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한치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강경입장을 보이고 있다.
▼꼬이는 ‘진실 찾기’
그렇다면 의료수가의 진실은 뭘까. 의문은 증폭되고 있지만 이를 속시원히 풀어줄만 한 자료와 기준은 찾기 어렵다.
의료수가 조정의 기준이 될 병ㆍ의원 경영수지, 나아가 의사들의 실질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병ㆍ의원 어느 곳도 정확한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고, 이를 강제할 법적 수단도 없다.
보고서를 낸 서울대 경영연구소가 수입ㆍ지출에 대한 조사를 위해 병원협회와 의사협회를 통해 조사자료표를 보냈지만 회수한 자료는 병원 38곳, 의원 9곳 뿐 이었다. 의원은 내과ㆍ소아과만 얻을 수 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수입지출의 노출을 꺼리고 있는 것이다.
의협측은 자료의 한계를 근거로 표본집단의 대표성을 문제삼고 수익구조가 나은 자료만 선택적으로 사용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측은 동네의사들의 수익이 낫다는 보고서내용을 불신한다면 병원의사들의 개원 러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되묻고 있다.
연구를 맡았던 안태식(安泰植)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조사표도 보내고 설명회도 열었지만 자료를 제대로 제공받을 수 없었다”며 “병ㆍ의원이 스스로 기술한 조사표조차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측은 현실왜곡이라는 의협 주장에 대해 표준원가 도입등을 통해 객관성을 담보했다고 반론을 펴고 있다.
▼대안은 없나
의료수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신뢰성 있는 수입ㆍ지출등 병원과 의사들의 회계자료를 공개를 강제하는 길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최근 ‘목표진료비’라는 개념이 연구되고 있다. 진료비 전체 총액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률등 여러 경제지표와 진료비 인상폭을 연동시키는 방식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최병호(崔秉浩)박사는 “진료단가를 규제하더라도 진료량을 늘릴 경우 보험재정압박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면서 “총액규제 역시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하고 적정치를 산출하는데도 진통이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 의료수가
의료수가는 의료기관의 치료비(소득) 가운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에 진료대가로 주는 비용.
의료수가는 그동안 그 수준을 의사가 임의로 정하느냐, 국가가 정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계속돼 왔다.
1977년 직장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 정부는 12개 대형병원의 자체 수가(진료비)를 기준으로 평균 75%(종전 진료비 대비)로 보험수가를 정했다. 당시 의료계는 수가가 지나치게 낮다며 크게 반발했었다.
이후 의료수가는 22년간 19차례 165.99% 인상됐으나 소비자 물가지수 인상폭보다는 낮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1년 국민건강보험법의 제정ㆍ발효로 수가고시제는 수가계약제로 바뀐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료기관협의체가 의료수가를 계약하는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이와함께 진료행위를 돈으로 따지던 방식에서 노동강도와 시간 등을 따져 점수화하고 점수에 대한 단가를 매기는 상대가치점수제가 도입됐다.
또 진료행위별 수가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환자수가 일정수를 넘으면 차등을 두는 차등수가제와 백내장등 일부 동일질병군에 대해 동일한 진료비를 받는 포괄수가제를 일부 채택했다.
그러나 의보수가를 놓고 보건당국와 의료계는 매년 힘겨루기를 계속하고 있으며, 올해에도 의료계가 관련 회의가 불참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개원의사 월평균소득 1,000만원對 428만원
과연 우리나라 의사들의 소득수준은 어느정도일까.
의사들의 돈벌이를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어떤 결과물을 도출하는 가는 의보수가 산정의 핵심. 이 때문에 소득수준을 놓고도 의사들과 보건당국의 입씨름은 계속되고 있다.
우선 서울대 경영연구소의 조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동네병원의사의 소득은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경영연구소측은 국내 개원의사의 소득수준은 월 평균 1,000만원 이상이며, 세계최고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미국 의사들 보다도 돈을 더 많이 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구소에 따르면 외래환자 위주의 미국의사들의 소득수준은 미국민 1인당 소득의 4.3배, 전문의사들은 7.3배에 이른다.
한국의 개원의들은 근로자 1인당 소득의 5.9배, 1인당 국민소득의 7.7배로 미국 의사소득수준을 능가한다.
다른 선진국들 보다도 국내 의사들의 소득수준은 훨씬 높다는 것이 경영연구소의 분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의사소득은 1인당 국민소득 대비 2배 수준. 병원 개업에 따른 위험도(파산 등) 등 OECD가 제시한 기준을 근거로 매우 보수적으로 산정해도 국내 개원의들의 소득은 월 515만원으로 1인당 국민소득의 4배에 달한다.
경영연구소는 그러나 실제로는 고용의사와 개원의는 각각 최소 620만원과 770만~950만원의 월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개원의사와 고용의사의 소득격차는 개원러시의 한 원인”이라며 “이 현상은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의사협회측은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자료와 국세청의 과세기준 등을 토대로 동네병원 전체 70%이상이 월평균 428만원밖에 벌지 못한다고 주장, 연구보고서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이는 월평균 1,712만원의 수입에서 세금과 영업비용 등을 제외한 것이다.
주수호(朱秀虎) 의협공보이사는 “의원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 전체의원을 대상으로 한 산술평균은 실상을 왜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산정한 의약분업 이후 1년간 개원의의 월 평균 진료비 수입(약제비 제외)은 연 2억8,561만원으로 월 2,200만원 수준.
의약분업 전 보다 연 8,600여만원이나 수입이 늘어났다. 의약분업 전 약가마진(30%)등을 감안해도 3,000만~4,000만원의 증가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진황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