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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25명 북경서 망명요청 / "한국에 올수 있게 다들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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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25명 북경서 망명요청 / "한국에 올수 있게 다들 도와주세요"

입력
2002.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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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入國 길수군“하루빨리 모두 한국에 와야지요. 정말 반갑게 맞이하겠습니다.”

4년 동안 갖가지 고초를 겪은 끝에 마침내 지난해 6월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들어오는데 성공한 장길수(18) 군.

그는 14일 낮 또 다른 탈북주민 6가족 25명이 중국 베이징(北京)의 스페인 대사관에 들어가 한국행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기자와의 전화를 통해 처음 듣고는 절박한 목소리로 매달렸다. “제발 잘 되도록 다들 꼭 좀 도와주세요.”

한동안 마음을 가라앉힌 길수군은 “그분들도 틀림없이 우리 가족과 비슷한 고통스런 경로를 거쳤을 것”이라며 “그분들은 지금 세상 사람들한테 고스란히 신분이 노출돼 무섭고 불안하겠지만 어떻게든 꼭 살아 들어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길수군은 자신의 경험담을 잠깐 되새기고는 스페인 대사관에 들어간 이들에게 조언을 전해달라고 했다. “그 곳 대사관 직원들이 나가라고 해도 절대 나가면 안 됩니다. 일단 언론에 공개가 된 이상, 곧 대사관측의 태도가 바뀔 것입니다. 안전을 보장 받기 전에는 그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버텨야 합니다.”

그는 또 “사실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탈북자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며 “세계의 도움을 받아 자유를 얻기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은 탈북자들이 이 같은 시도를 계속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서울의 B고교 1학년에 재학 중인 길수군은 작은 임대아파트에 외할머니 등 가족들과 함께 살며 학교 공부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국에 오니까 몸은 편한데 공부하랴, 이것저것 신경 쓰랴 고민이 많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길수군을 힘들게 하는 것은 어머니 생각. 이날도 전화통화 끝에 그는 어머니 얘기를 하다 끝내 목이 메었다.

“오늘은 학교에서 학부모 회의가 있어서 오전 수업만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 학부모들 중에 우리 어머니도 계시면 얼마다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주 토요일에 시험이 있는데 이 사건 때문에 엄마가 더 보고 싶어 공부가 잘 안 될 것 같아요. 그 중에 엄마가 있었으면, 엄마 소식을 아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길수군의 일가 친척 등 4가족 16명이 탈북한 것은 1997년. 그러나 어머니 정선미(47)씨는 붙잡혀 다시 북에 억류됐고 이 때 헤어진 길수군 등 7명이 지난해 6월26일 베이징의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실(UNHCR) 사무소로 들어가 난민 지위 인정과 한국행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결국 국제사회의 도움과 정부의 노력으로 이들 7명은 6월30일 기적적으로 한국 땅을 밟았고, 이들보다 먼저 몽골을 통해 한국에 들어 온 형 한길(21)씨 등 3명과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

길수군은 “소식을 모르는 부모님을 이 곳에 모셔오겠다는 일념으로 정착지원금 3,000만원을 한푼도 쓰지 않고 예금해 두고 있다”며 “지난해 겨울에는 전단을 나눠주는 아르바이트까지도 했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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