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두면, 그들은 서로를 흉내낸다. 모든 행동의 부조리함은 우리가 닮을 수 없는 사람을 흉내내려고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영화 ‘생활의 발견’을 시작하면서 홍상수(41) 감독은 이 말을 메모해 놓았다.
우리가 무척 낯익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냉정하고 솔직하게 까발림으로써 그 일상을 낯설고 재미있어 보이게 하는 그가 이번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그 ‘하고 싶은 대로’ 와 ‘흉내’.
그것을 위해 홍상수 감독은 미리 대본을 써 놓지 않았다. 그날그날 느낌에 따라 대사를 만들고, 배우들은 진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주어진 상황에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그 결과 영화는 감독이 생각했던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자신도 모르게 남을 흉내내고, 심지어 자기복제까지 서슴지 않는 배우들. 영화에서뿐 아니라, 영화 밖의 것까지 흉내냈다.
어느새 홍상수 감독을 닮아있는 배우 김상경. ‘생활의 발견’이란 바로 춘천 소양호에 있는 오리배가 경주 보문호에도 있듯 우리 일상에서의 갖가지 모방의 발견이었다.
연극배우 경수(김상경)가 6박7일의 여행을 떠난다. 영화출연이 좌절된 그가 찾아간 곳은 글 쓰는 선배가 있는 춘천.
그곳에서 그는 선배가 사랑하는 무용가 명숙(예지원)을 만난다. 푼수끼 있는 여자는 경수와 섹스를 하고는 그것이 사랑임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여자는 연민과 질투심을 자극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만, 끝내 남자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 “미친 년”이라고 내뱉고 고향인 부산으로 떠나는 경수.
기차 안에서 경주 여자 선영(추상미)를 만난다. 연극배우인 자신을 알고 있는 그 여자에게 마음이 끌려, 경주에 내린 상경.
이번에는 그가 춘천에서 명숙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을 들먹이며 유부녀인 그녀에게 집착한다.
그러나 여자는 그와의 섹스를 사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손바닥에 적은 그녀의 전화번화가 비에 젖어 지워지듯 돌아서는 남자.
일곱 단락으로 나누어진 ‘생활의 발견’에서 일상은 릴레이 경기처럼 사람들을 전염시킨다.
상경은 영화사 선배가 내뱉은 “사람 되는 것은 어렵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는 말을 춘천의 선배에게 말하고, 어느새 술 먹으면서 몸을 흔드는 선배의 버릇을 흉내낸다.
섹스를 하면서 명숙에게 물었던 느낌에 대한 질문을 선영에게 똑같이 한다.
경수가 선영을 만나기 위해 그녀를 집 앞으로 불러내서 벌이는 수작 역시 옛날 중학교 때 우연히 만나 선영에게 그랬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심지어 명숙이 사진 뒷면에 쓴 구절과 선영의 편지에 있는 구절이 똑같다는 이 기막힌 우연의 일치.
‘생활의 발견’은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유쾌하고 장난스럽다.
감독은 일상에서의 우연과 무의식을 치밀하게 배치했고, 섹스를 중요한 수단으로 삼으며 소통의 단절을 코믹한 대사로 처리했고, 배우들은 마치 자신들의 일상인양 또 다른 ‘흉내’를 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강원도의 힘’(1998년)과 ‘오!수정’(2000년)에서 보아온 익숙한 것들이다. ‘생활의 발견’은 어쩌면 홍상수 감독 자신의 자기복제에 대한 변명이자 조롱일지도 모른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