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하기를 바라는 국민의 바람은 거의 통일을 바라는 그 수준인 듯 하다.이쯤 되면 ‘우리의 소원은 16강’이라는 노래가 나올 법도 하다.월드컵에서 1승도 못해 본 나라에서 웬 16강 타령이냐고, 주제파악을 못하는 것은 잘못된 국어교육 탓이고 분수를 모르는 것은 잘못된 수학교육 탓이라고 농담 삼아 입바른 소리를 하는 친구에게 그렇다고 꿈도 못 꾸느냐고 웃으며 대꾸했던 기억이 난다.
나 역시 우리나라의 16강 진출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별의별 경우를 다 따져가면서 16강 진출 가능성을 점쳐보곤 하는데, 그 친구의 입바른 농담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월드컵 본선진출 32개국 대표선수들의 몸값을 나라별로 평균하면 우리나라가 몇 등쯤일까?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거의 꼴찌에 가까울 것이다.
프로의 실력이 몸값 순이라는 주장에 100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지만 몸값이 열 배나 스무 배 이상이라면 상당한 실력 차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축구선수들의 몸값은 그들의 기량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축구열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축구선수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고액의 몸값을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은 축구가 그만큼의 돈을 번다는 뜻이고, 그 나라 사람들의 축구사랑이 그만큼 엄청나다는 증거이다.
그리 크지도 않은 경기장도 다 채우는 경우가 드문 우리나라 프로축구의 현실은 우리가 축구사랑에서도 16강에 들지 못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선수들의 기량, 훈련 및 경기시설, 유소년 프로그램, 프로축구 열기 등 어느 하나 16강에 든다고 자신 있게 내세울게 없다.
그러면서 감독 한 사람 16강급으로 모셔다 놓고 우리축구가 16강에 들기를 바라고 있는 모양이 아닌가?
이쯤에서 16강의 꿈을 접어야 하나? 그래도 그럴 수는 없다. 여러 가지 경우를 따져보니 운이 좋으면 2무1패라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반면에, 운이 나쁘면 2승1패, 또는 1승2무라도 탈락할 수 있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주고 이번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에서 호주선수를 우승시킨 행운이 우리에게도 찾아온다면 16강이 아니라 8강도….
하지만 우리 대표팀에게 우리가 얼마나 무리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아야겠다. 기적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지 당연한 것처럼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경기하는 날엔 전국의 축구팬 모두가 붉은 티를 입으면 어떨까? 기적을 바란다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김명환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바로잡습니다
7일자 오은 스위니씨의 ‘경기장을…’ 제하의 칼럼중 ‘비싸더라도 공식 유니폼을 구입하는데 부담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비싼 공식 유니폼을 사 입을 필요는 없다’의 오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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