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33)은 가요계에서 나이에 비해 영향력이 큰 사람으로 꼽힌다. 데뷔 14년차라는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영화음악감독은 물론 라디오 DJ와 서울예대 강사 등 다방면에서 언제나 어느 선 이상을 해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를 두고 “영리하다”고 하지만, 무조건 시류를 타지 않으면서도 흐름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감각은 확실히 그의 장점이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의 고민은 수평적인 것 보다는 수직적인 것이다.
“나이 서른 셋에 무엇을 할 것이며, 늙은 다음 돌이켜 봤을 때도 만족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했다.
8집 ‘…그리고 김현철’도 그런 고민의 결과인 듯했다. 첫 방송인 ‘이소라의 프로포즈’ 녹화장에서 그를 만났다.
-전에 없이 다른 가수들이 참여가 많은데 보컬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서인가.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과 작업한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노래는 결국 가수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프로듀서로서의 경험의 결과다.”
-참여 가수들을 고르는 기준이 있었나.
“기준 같은 건 없었다. 모두 평소 친한 사람들이다. 불독 맨션처럼 술자리에서 음반 이야기를 듣고 참여를 자청한 경우도 있다. 모두 노 개런티로 참여한 것도 다 친분 덕이다.”
-후배들과의 작업에서 느낀 점은.
“일단 고맙다. 바쁜 스케줄 맞춰준 것도 그렇고 내 의도를 모두 70% 이상 설명 없이도 이해해 주었다. 무언가를 가르쳐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건 아니지만, 이것 저것 가르쳐 주면서 배운 것이 훨씬 많다.”
-참신하다는 극찬을 받았던 1집과 비교한다면. 갈수록 진부해진다는 평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1집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매번 무언가 180도 달라진 변화를 기대하지만 싱어송라이터에게 그런 변화는 정말이지 힘들다. 내가 추구하는 변화는 세련됨으로 음반의 짜임새나 풍성한 사운드 등을 통해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사업 쪽에도 재주가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돈은 빚지지 않아도 될 정도만 있다. 하하. 학생들 가르치는 일과 영화 음악 나아가 제작, 회사 설립을 모두 생각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새 음반이 최고의 사업이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8집 어떤 앨범
음반 ‘…그리고 김현철’은 프랭크 시나트라 등 팝계의 거장들이 종종 발표했던 듀엣 앨범 형식이다.
타이틀 곡인 ‘러빙 유’ 한 곡만 김현철이 불렀고 나머지 11곡은 모두 다른 이들과 함께 했다.
‘캐리비안 크루즈’에 참여한 봄여름가을겨울만 빼면 모두 김현철보다 늦게 데뷔한 후배들이다.
윤상 김광진 박효신 박완규 등은 평소 교류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이들이지만 핑클의 옥주현이나 애즈원, 뮤지컬 가수 이소정, 개성 강한 밴드들인 불독 맨션과 롤러 코스터의 참여는 다소 의외다.
지영선은 김현철이 서울예대에서 가르친 제자.
음반은 전작들에 비해 한결 다채롭다. 김현철의 쳐놓은 음악적 테두리 안에서 발라드, 디스코, R&B, 재즈, 보사노바, 모던 록 등 가수마다의 장기가 적절하게 녹아 있다.
박효신과 부른 ‘그보다 더’나 드라마 ‘피아노’의 조재현을 보고 박완규와 부른 ‘어부의 아들’ 등에서는 비꼬는 듯, 돌려 말하는 듯한 김현철 특유의 노랫말 다듬는 솜씨도 즐길 수 있다.
그에게서 여전히 1집 ‘춘천 가는 기차’ 시절의 참신함을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의 스타일을 인정하고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안심하고 들어도 될만한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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